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

석축의 아름다움을 통해 불국사를 다시 보다

by 푸른가람 2012. 2. 27.
728x90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에서 불국사를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얘기는 불국사는 누구가 보더라도 아름다워서 꼭 한번은 보고 싶어하는 문화재라는 뜻이기도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궁극 또한 바로 불국사라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불국사는 너무나 유명한 절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그 흔한 수학여행이나 경주 여행을 통해서 생애 한번쯤은 불국사 경내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불국사를 잘 안다 여길 지도 모르겠다. 불국사를 와보지 않았더라도 그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 청운교와 백운교 등의 이름을 줄줄이 꿸 정도니 말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인연에서였는지 경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덕에 불국사는 꽤나 익숙한 장소였다. 11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 닿으면 그곳이 바로 불국사 입구 주차장이었다. 오기인지 객기인지 일본어 시험 시간에 백지 답안지를 내고 찾아온 곳도 바로 불국사였고, 아무런 이유 없이도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이면 발걸음이 절로 이곳으로 떼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불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불국사의 역사가 아니라 불국사가 지니는 아름다움에 대해 보는 눈이 없었다. 그저 정해진 코스대로 별다른 느낌 없이 불국사 경내를 한바퀴 돌아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가끔은 달빛 아래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고, 극락전 앞 복돼지상에 입을 맞춰 보기도 했었다.











만약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뒤늦게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불국사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알지 못할 뻔 했다. 유홍준 교수는 불국사의 아름다움 가운데 으뜸을 석축으로 꼽았다. 산자락에 위치한 불국사는 불가피하게 경사지를 두개의 단으로 조성하고 거기에 석축을 쌓았는데 아랫단은 자연미나게 쌓았고 윗단은 다듬은 돌로 인공미나게 쌓았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동안은 무심코 보아 넘겼던 석축 아래에서 난 한참을 서 있었다. 정말 그랬다. 석축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아랫단은 투박한 자연석을 쌓아 올렸고, 윗단은 잘 다듬어진 돌로 단아한 모습이었다. 특히나 자연석의 초석을 깎은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얹을 장대석을 자연석에 맞춰 깎은 그랭이기법의 석축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극락전 안양문에서 연화교를 내려다 보면서 연꽃무늬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세심히 살펴보는 것도 불국사 답사의 또다른 재미거리다. 시간대에 따라서 빛에 따라 선명함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안양문에 한참을 서서 아래 쪽을 내려다보면 돌계단 위에 연꽃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몇해 전이 복돼지의 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무렵에 불국사 극락전 앞에도 복돼지상이 세워진 것 같다. 많은 재물을 얻고 싶은 욕심에 사람들은 저마다 복돼지상을 만지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하는데 원래 극락전 복돼지가 어디에 있는 지는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복돼지는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 있으니 복을 구하려 한다면 여기에 빌어보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유홍준 교수의 글처럼 관심을 가지고 그 전에 모르던 것들을 하나 둘 알아가게 되면서는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게 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석축과 연화교 연꽃 무늬 외에도 불국사의 감춰진 아름다움은 여럿 있으니 이것들을 꼼꼼히 찾아보는 것도 불국사를 찾는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불국사 앞마당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구품연지는 청운교와 백운교 아래에 있던 연못으로 동서로 길이가 39.5미터, 남북으로는 폭이 25.5미터가 되는 타원형 형태였는데 1970년대에 불국사 복원 공사를 하면서 불국사 앞마당의 나무가 훼손된다는 점, 관람객의 수용 등을 고려해 복원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물론 그러한 결정에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쉬운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구품연지가 있었더라면 지금의 불국사는 불국토의 구현이라는 당초 건축 목적에 부합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매번 나는 범영루 아래를 지날 때면 범영루가 그 이름처럼 화려한 축대와 함께 구품연지에 비쳐지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