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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봉정사의 숨겨진 보물 영산암

by 푸른가람 201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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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번잡함을 잊으려 절을 자주 찾곤 한다. 그 중에서도 안동 봉정사는 내가 자주 찾는 단골(?) 사찰 중 한 곳이다. 매번 봉정사를 찾을 때마다 단 한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이곳도 이번에는 내가 때를 잘못 맟춘 것 같다. 하필이면 성지순례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수십명의 사람들이 봉정사를 분주히 거닐고 있었다.





산사에 오면 바람에 몸을 내맡기며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고요한 독경소리, 목탁 소리만이 혼탁한 속세의 소리를 잠재워 줘서 참 좋았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소리에 이 좋은 소리들이 묻혀 버리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 아래에도, 지난해 국보로 승격된 대웅전 안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봉정사를 찾는 사람들 중에 모르고 스쳐 지나는 곳이 한 곳 있다. 봉정사 요사채 뒷편의 낮은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영산암이 바로 그 곳이다. 영산암은 봉정사에 딸린 참선방인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라는 영화를 촬영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꼭 들러봐야 할 만한 이유가 또 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티가 확연한 우화루 밑으로 난 작은 대문으로 몸을 숙이고 영산암에 들어서면 작은 승방이 몇곳에 나뉘어 있다. 영산암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바로 마당이다. 이 넓지 않은 마당에는 절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인공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유홍준 교수는 영산암 마당을 두고 감정의 표정을 이렇게 많이 담은 마당을 본 적이 없노라고 얘기했다. 봉정사의 기도처인 대웅전과 극락전의 앞마당은 정연한데 반해, 영산암 앞마당은 일상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문외한인 내 눈에도 분명 영산암은 보통의 절이나 암자에서 느껴지는 엄격한 규율 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묻어난다.




최고의 목조건물이라는 희소가치로 봉정사를 대표하는 건물이 된 극락전보다 나는 대웅전이 좋다. 극락전 보다 오히려 대웅전이 더 고풍찬연하게 느껴지고 더 아름다워 보인다. 넓은 마당에 탑도 하나 없이 덩그러니 외로워 보이는 이 대웅전에서 만세루를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스럽다.







아쉽게도 만세루에는 오를 수가 없다. 비 내리던 어느 여름날 만세루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 세월은 부질없이 흐르고 만세루도 그 세월만큼 더 나이를 먹었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한번 깨우치며 만세루 아래를 내려온다. 옆에 서 있는 소나무가 잘 자라게 하려고 제 가지가 잘린 저 나무는 지금 슬플까,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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