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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애증의 대상 임창용을 떠나보내며..

by 푸른가람 2007.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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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임창용이 한국무대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고 한다. 행선지는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 새로운 유니폼이 그에게 잘 어울려 보인다. 동기생 이승엽이 확실히 터를 잡은 일본무대에 그는 '08년 시즌 신인으로 선을 보이게 될 것이다. 팬들의 기대와 우려속에 새로운 도전을 택한 그는 다시 부활할 것인가? 그의 뱀직구는 일본타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만큼 그 위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삼성팬인 나에게 그는 애증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1999년 어느 겨울날. 영호남의 야구팬들이 경천동지할 사건이 일어났다. 삼성의 간판타자 양준혁과 해태의 철벽마무리 임창용의 트레이드가 성사된 것. 그것도 1:1 맞트레이드가 아니었다. 충격을 받은 양준혁은 트레이드 거부를 선언했지만, 우여곡절끝에
삼성과 해태의 결국 '빅딜'은 성사되었다.

1995년 해태에 입단한 임창용은 '97 시즌 드디어 해태의 마무리투수라는 중책을 맡아 14승8패 24세이브 평균자책 2.33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둔다. 이듬해인 '98년에는 더욱 언터처블이 되어 무려 34세이브에다 1점대의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고질적인 마무리 불안에 고심하던 삼성 고위층의 총애까지 받게 된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꿈틀거리며 돌진하는 그만의 '뱀직구'는 TV중계화면으로도 그 위력을 간접경험하게 할 정도였다. 마무리투수에 관한 모든 기록은 그가 새로이 작성할 듯 보였다.

하지만 '96년 114.2이닝을 시작으로 삼성으로 이적한 첫해인 '99년의 무시무시한 138.2이닝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130이닝을 넘긴 그도 혹사 앞에선 장사가 있을 수 없었다. 삼성 이적후 허약한 마운드를 책임지며 든든한 승리지킴이로 활약하던 임창용은 '01년 시즌들어 선발전업을 선언한다. 애리조나의 마무리 김병현이 그랬던 것처럼 선발투수의 매력은 팬들이 보는 그 이상인 것 같다.

'01년 14승, '02년 17승, '03년 13승으로 3년연속 10승 투수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임창용은 팀사정상 '04년에는 다시 마무리로 돌아서 36세이브를 올리며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평균자책은 2.01이었고 67이닝을 던졌다. '02년에 무려 204.1이닝을 던진 것에 비하면 1/3 이하로 떨어진 것. 선동열코치가 투구수를 조절해 준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혹사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탓일 것이다.

2004년을 정점으로 임창용은 서서히 쇠락해갔다. '05년 5승8패에 6점대(6.50)를 훌쩍 넘긴 평균자책을 기록하더니 '06년에는 부상으로 시즌 막바지 1게임에만 나와 1승을 기록하는데 그친다. 선수생활의 최대 위기가 찾아온 것.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수근거림 속에서 그는 올시즌 희미해져가던 그의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비록 5승7패 4.90의 평균자책이라는 성적은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119.1이닝을 책임졌다. 아직은 던질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이미 전성기 시절의 위력은 아니더라도 150km을 넘기는 볼빠르기도 아직은 매력적이다. 새로운 무대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해 볼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임창용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다. 섣불리 모험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지만 그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마운드에서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일본타자들을 상대해주길 기대해 본다. 해태와 삼성이라는 한국프로야구의 양대명문팀을 거치며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이기에 그의 마지막이 불꽃처럼 타오르길..

화려했지만, 그리 순탄하지 못했던 그의 야구와 인생이 앞으로는 수월하게 잘 풀려나갔으면 좋겠다. 이젠 더이상 구설수에 오르는 일도 없기를 바란다. 이제는 야구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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