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떠올려 보니 고운사를 처음 찾았던 것이 지난 겨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눈이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 구석구석에 잔설이 흰 여운을 남기고 있었고, 입구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아름다운 숲길은 물기로 질퍽질퍽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한번 이곳을 찾겠노라고 다짐했던 것도.
늘 마음에는 두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정작 또 계절이 한번 순환할 때 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습니다. 어느새 고운사도 가을 빛이 완연해지고 있었습니다. 지난번에는 차를 타고 지나왔던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숲길을 이번에는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고운사 입구의 숲길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천년 숲길이라는 별도의 유명한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고운사 입구에서 일주문 바로 옆에 이르러 끝나는데 길이가 1km 정도로 십여분 정도면 넉넉하게 고운사에 당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숲길을 걸어보고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남겨 놓았길래 이번에 한번 걸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아껴 두기로 했습니다. 다음에 또 고운사를 찾아야 할 이유를 하나 남겨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굳이 그 천년 숲길이 아니더라도 고운사 진입로 자체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특히나 바닥의 흙이 너무나 매끈해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마치 아스팔트로 포장한 것보다 훨씬 더 맨들맨들해서 길을 걷는 느낌이 너무나 좋습니다. 게다가 길을 포근하게 감싸안아 주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내뿜는 신선한 공기도 고운사 숲길이 우리에게 주는 고마운 선물입니다.
걸어가면 한참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실제 걸어보니 금방이네요. 간간이 지나가는 차가 있긴 했지만 나처럼 차를 입구에 두고 걸어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동안의 편안함 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가을이 하루하루 깊어가는 숲길을 걸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어느새 일주문에 다다랐습니다. 고운사의 느낌은 지난 겨울때나 지금이나 똑같았습니다.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 그대로지요. 이번엔 용기를 내 법당안에 들어가도 보고, 불전함에 시주도 하고 간절한 소망을 담은 기도도 잠깐 올렸습니다. 그동안 여러 절을 다니면서 눈치보지 않고 서서히 적응해 가는 느낌이 드네요.
그때나 이번이나 찍은 사진들을 보니 큰 차이가 없습니다. 늘 바라보는 그 시선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득이 하나 있다면 고운사 호랑이 벽화에 대한 설명을 사찰 관계자분으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거지요. 왜 호랑이의 눈이 바라보는 사람을 늘 바라보게 된 것인지를. 아쉬운 것은 이 소중한 벽화가 공양간(식당) 앞에 하찮게 보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른 그 격에 어울리는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음 좋겠네요.
요즘 유명한 사찰들을 보면 대부분이 사찰 입구에 식당이나 상가들이 조성되어 있어 산사다운 느낌을 제대로 누리기가 힘이 든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고운사는 상가는 커녕, 주변의 민가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어 천년고찰다운 고즈넉함을 맘껏 누릴 수가 있다는 것이 매번 찾을 때마다 참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도 고운사가 고운 느낌을 제대로 간직하게 되길 바라며 숲길을 다시 걸어 나왔습니다. 언제쯤 다시 이 길을 걷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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