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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집 강릉 선교장

by 푸른가람 2010.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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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이란 곳이 있다는 걸 안 건 지난해였지만 그로부터 일년이 지나 강릉 선교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흔하디 흔한 고택체험 하는 숙박시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제대로 공부를 안한 탓이었다. 여느 관광지처럼 매표소도 있고, 입구를 들어서면 너무나 잘 정돈된 모습이 마치 어느 공원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뭐라 그럴까. 너무 깨끗하고 단아한 모습에 처음에는 이질감을 느낀 게 사실이었다. 몇번 다녀본 고택들은 예스러움은 느낄 수 있었으나 사람들의 세심한 손길이 닿은 흔적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선교장은 달랐다. 그 넓은 구석구석을 매일같이 누군가 쓸고 닦고 한 듯한 정갈함이 절로 느껴졌다. 한바퀴 돌고나니 엄격한 사대부 집안의 가풍을 느끼게 하는 듯 해서 옷매무새도 한번 더 살펴보게 하는 곳이 이곳 선교장이 아닌가 싶다.







선교장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이내번에 의해 처음 지어져 이후 10대에 이르면서 발전해 오늘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아흔아홉칸 조선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1965년에는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5호로 지정되어 개인이 소유한 국가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지금도 그 후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통문화 체험을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300년 이상이나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는 전통가옥에서 하룻밤 묵어 보는 것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선교장 뒷산의 노송을 비롯한 주변의 풍광 또한 아주 훌륭하다.








과거에는 경포호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 하여 선교장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때 호수는 지금은 논이 되어 그때의 모습을 떠올릴 수는 없다. 풍수지리에는 문외한이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선교장 자리는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한 천하의 명당자리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선교장을 한바퀴 도는 내내 심신이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2000년에는 한국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톱 10을 선정할 때 전통가옥 분야에서 한국최고 가옥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실제 돌아보니 정말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러 고택을 다녔어도 내가 이 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들었던 곳은 없었던 거 같은데 선교장은 좀 욕심이 났다. 이런 집을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할까? 문득 부질없는 돈 욕심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걸 보니 오래 머무를 곳은 아닌 것 같다.







유달리 기억에 남는 두 곳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 작은 연못가에 활래정이 세워져 있다. 정자에 앉아 만개한 연꽃을 바라보며 술잔이라도 한잔 기울이는 상상을 해본다. 아주 환상적일 것 같지 않은가. 혹여라도 배 한척을 연못에 띄어 연꽃 사이를 유유히 움직이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곳은 아마도 본채인 열화당 뒷편으로 생각되는데 그리 넓지 않은 폭의 마루가 길게 이어져 있다. 아무리 더운 여름날이라도 이곳에 누워 있으면 더위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누워보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모두가 아끼고 보존해야 할 중요한 문화재가 아니던가. 뒷편 계단을 올라가면 초가지붕을 얹은 집이 하나 있는데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주로 회의장으로 쓰이는 듯 좌식 의자가 놓여 있는 게 전통가옥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긴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의 선교장 체험이었지만 그 여운이 한참 남아 있을 것 같다. 가까이에 있다면 내 집처럼 늘 들러보고 싶은 곳이지만 차로도 너댓시간은 움직여야 하니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 그나마 사진이 있으니 생각날 때마다 보면서 그때 기분을 떠올려 볼 수 있음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것 같다. 3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선교장은 이렇게 사진 속에서 늘 나와 함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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