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게도 지은이의 서문이 없는 책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여행 담당기자로 살아온 최병준이라는 사람은 그래서 자신의 삶과도 같은 여행을 23개(엄밀히 셈하자면 24개)의 키워드로 표현해 냈다. 그 키워드를 책과 함께 풀어내는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책 제목도 '책과 여행과 고양이'로 뽑아냈던 게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키워드로 그간의 경험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선은 그간의 여행의 행로가 아직은 짧고 보잘 것 없기 때문이요, 그것을 담아낼 글솜씨도 사진 실력도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폭넓은 식견과 잘 다듬어진 글솜씨와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 한장한장이 부럽기만 하다.
해외여행 경험이 딱 한번 뿐이긴 하지만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는 풍성하다. 마치 어느 시골역 같았던 중국 국내선 공항에서 바라보던 이국 밤하늘의 별들도,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불편한 잠을 청해야 했던 악몽같았던 시간들도 이제는 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감성을 자극한다.
다음에 공항에 가게 된다면 지은이의 충고대로 여행 초보 티를 내지 않게 옷차림은 허름하게 하는 편이 좋겠다. 언제 읽다 덮어도 상관없는, 시작과 끝이 따로 없는 책 한권과,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안되는, 두꺼운 양장표지가 붙은, 단어의 뜻이 맞나 틀리나 해석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책, 이렇게 두권의 책을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지은이는 여행도 개 같은 여행이 있고, 고양이 같은 여행이 있다고 표현했다. 가난한 여행자들의 낙천적인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돈이 아쉬워서 늘 몸을 낮은데로 굴리는, 그래서 돈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쉬고 싶으면 쉬어갈 수 있는, 시간으로부터는 자유로운 여행이 개 같은 여행이다. 천하고 더럽다는 게 아니라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여행자들의 여행법이다.
이에 반해 고양이 같은 여행은 좀 까다롭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처럼 호텔을 가리고, 식당을 가리는 깔끔한 여행법이다. 늦잠을 자고 느지막히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뒹굴거리면서 책이나 읽는 여행이 바로 고양이 같은 여행이라 지은이는 규정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 개 같은 여행보다는 고양이 같은 여행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여행의 풍경 / 개, 고양이
여행의 체험 / 미술관, 건축, 사진
여행의 친구 / 커피, 맥주, 담배
여행의 여정 / 걷기, 열차, 택시와 버스
여행의 아름다움 / 밤, 백야, 로맨스
여행의 즐거움 / 에티켓, 패스트푸드, 슬로푸드
여행의 가르침 / 종교, 탐험가, 우주여행
아마 내가 나중에 여행에 관한 책을 쓰게 된다면 분명 그 책에 담길 키워드는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것들과는 다를 것이다. 물론 사진이나 맥주, 커피, 밤, 기차, 버스, 로맨스 같은 것은 여행의 공통분모가 되어 줄 수도 있겠지만 공항보다는 허름한 시골역이나 터미널이, 호텔보다는 민박집이나 여관이, 미술관보다는 폐교를 개조한 예술가의 갤러리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게 될 것 같다.
어느 것이든 무슨 상관이랴. 개 같은 여행보다 고양이 같은 여행이 우월할 수 없듯 그것은 그저 여행자의 여행의 방식일 뿐이다. 그것이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풍경이든, 우리가 곁에서 늘 보아오던 익숙한 풍경이든 문제가 되질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여행을 통해서 충분히 설레고, 즐겁고, 그래서 행복했으면 그걸로 충분히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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