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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전쟁의 상흔을 '여백의 美'로 채워가는 고성 건봉사

by 푸른가람 2010.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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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라고 들어 보셨나요? 나름 여행을 즐긴다는 이에게 물어봤더니 "심봉사는 들어봤어도 건봉사는 금시초문"이란 얘길 해주더군요. 저 역시 전국의 이름난 사찰은 직접 가보지는 못해도 이름 한번쯤은 들어 익숙할 법도 한데 건봉사는 참 생소하더군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의 금강산 줄기가 시작되는 건봉산 줄기 동남쪽에 위치해 있어 '금강산 건봉사'라 불립니다. 이 지역은 휴전선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최북단 지역으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입니다. 게다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1989년에야 겨우 일반인들에게 전면 개방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진 부처님 오신 날에만 겨우 불자들이 드나들 수 있게 허용이 되었다고 하니 남북 대치 상황이 스님들이 수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었을 것 같긴 합니다.







신라 법흥왕 7년인 520년에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원각사라 불렀던 것이 이 절의 시초라고 하지만 이 당시 이 지역이 고구려 영토에 속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전설로 여겨집니다. 남북국시대부터 중건되고 불교행사가 열린 기록이 있으며 고려 초 태조 왕건의 스승인 도선이 중건하고 서쪽에 봉황 모양의 돌이 있다 하여 서봉사로 불렀던 것을 고려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중창하고 드디어 건봉사란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건봉사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 입니다. 원래 이 진신치아사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와 양산 통도사에 봉안했던 것인데 일본이 임진왜란때 강탈해 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 와 이 곳에 봉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건봉사에서 가장 깊숙한 쪽에 적멸보궁이 세워져 있고 그 뒤쪽에 사리를 모셔둔 부도탑이 있습니다.








건봉사 적멸보궁은 형태에 있어서도 독특한데다 형형색색의 연등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적멸보궁과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불상이 없는 대신 진신사리를 모셔 놓은 부도탑이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법당 안에서 정면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4대 사찰의 하나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고, 일제시대 때도 31본산 중 강원도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신흥사, 백담사, 낙산사 등을 말사로 거느렸다고 합니다. 6.25 전란 중 피아간 치열한 전투를 겪으며 거의 모든 전각이 불타 소실되는 큰 피해를 당하며 지금은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사격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 엄청난 전란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그 형태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지난 2002년 6월에 보물 제1336호로 지정된 능파교와 건봉사 입구의 불이문이 그것입니다. 능파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무지개다리로 적멸보궁으로 이르는 길과 대웅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매우 아름다운 다리 입니다. 흡사 선운사의 승선교를 떠올리게도 하더군요. 불이문은 일제 시대때 만들어진 팔각지붕의 사문으로 녹음이 우거진 건봉사 입구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모 장군이 건봉사를 와 보고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치 좋은 곳에는 절 아니면 군부대가 들어와 있구나" 하며 한탄한 적이 있다는데 사실 건봉사의 위치 자체가 썩 그리 풍광이 좋다고는 못하겠네요. 보는 눈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시원하게 트여 있는 맛도 없고 그렇다고 낙산사처럼 푸른 동해바다가 조망되는 것도 아니라서요.














개인적으로 건봉사는 여백의 미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규모가 워낙 컸던 절이니 부지 자체도 넓습니다. 지금 복원된 건물도 몇채 되지 않으니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이 많습니다. 저는 그 폐허 속에서 전쟁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더군요. 입구에는 조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야생화 동산이 있습니다. 이것도 세월이 좀더 흐르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리를 잡아 갈 겁니다. 전쟁의 상흔을 여백의 미로 채워가는 건봉사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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