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청량사를 처음 접하고 그 '맑고 서늘한' 느낌이 좋아 언제고 다시 청량사를 찾으리라 다짐 했었습니다. 이왕이면 환상적인 단풍이 선경(仙景)을 떠올리게 한다는 가을이 좋겠다고 생각하고서도 역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해가 바뀌고서야 청량사를 들럴 수 있게 되었네요. 비록 단풍과 어우러진 멋진 청량사의 풍경은 아닐지라도 또 봄은 봄대로 나름의 멋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산길을 걸어 올라 갔습니다.
지난번에는 등산코스를 따라 구름다리를 거쳐 청량사에 도착했기 때문에 한참이 걸렸었는데, 이번에는 주차장 입구에서 바로 청량사에 이르는 작은 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보니 금방 청량사가 시야에 들어 오더군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멀리서 봐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청량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어수선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무슨 공사를 하는 지 길이 가로막혀 있어 한참을 돌아서 걸어야 했고, 드라마 촬영으로 인해 유리보전 앞의 오층석탑은 아예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때마침 세찬 봄바람이 청량사를 휘감아 돕니다. 드라마 촬영 스탭들이 청량사를 찾은 탐방객들의 소리에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청량사가 최근에 영화 '워낭소리'나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아오는 발길이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얼마전 시작한 '동이'라는 드라마에도 청량사가 등장하고, 몇몇 CF의 배경으로 나올땐 무척 반가운 기분도 들었습니다. 물론 드라마 촬영, 특히 사극을 찍다보니 이런저런 소음에 신경이 쓰이기도 할 겁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청량사가 일개 드라마 촬영장도 아닌데,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일 좋은 사진 포인트를 뺏기다 보니 이번은 청량사 초입에 있는 산꾼의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 많네요. 덕분에 지난번에는 그냥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청량사를 돌아 내려오는 길가에서 마주친 노루귀도 무척 반갑습니다. 다음번 청량사를 찾을 때는 드라마 촬영장이 아닌 맑고 서늘한 느낌의 청량사로 다시 되돌아 오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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