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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삼성과 롯데의 포스트시즌 잔혹사(1) - 1984년 한국시리즈

by 푸른가람 2008.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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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억하기 싫은 악몽. 1984년 한국시리즈는 삼성팬들에게 아픈 기억이다. 이후로도 무려 18년 동안이나 지긋지긋하게 계속되던 삼성의 준우승 징크스가 사실상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물론 1982년 OB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이 있긴 하지만 전력면에서 삼성이 OB에 우위에 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충격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84년 한국시리즈에서 당했던 삼성의 참패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야구의 인기에 불을 지핀 계기가 되었다.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롯데가 천하무적으로 불리던 골리앗 삼성을 극적으로 무너뜨린 이 시리즈는 한편 ’정의는 승리한다‘는 격언을 증명하는 사례로 회자되곤 한다. 84년 정규시즌 말미에 벌어졌던 추악한 져주기 경기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법하다.


가을잔치가 벌어질 때쯤이면 빠지지 않고 리플레이되는 장면. 바로 ‘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8회초에 터진 유두열의 역전 홈런이다. 이 타석까지 1할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타율을 기록하며 빈공에 허덕이던 유두열이 터뜨린 이 홈런은 이 땅의 많은 서민들에게 ’인생 대역전‘의 희망을 꿈꾸게 했다. 그러나 그 ’화려한 한방‘ 속에 묻혀버린 철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부산야구의 상징 최동원이었다.


롯데 에이스 최동원은 시리즈 1, 3차전 선발에 이어 5, 6, 7차전에 연달아 등판하며 철완을 과시했다. 전무후무한 ‘한국시리즈 4승’의 훈장이 그의 목에 걸렸지만 불꽃처럼 타올랐던 84년이 없었다면 그의 야구인생도 좀더 길고, 무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오늘이 이 세상 마지막인 것처럼 그는 마운드에 올라 볼을 뿌렸고, 팬들은 그의 다이나믹한 투구에 매료됐다.


김일융과 김시진이라는 쌍두마차 에이스를 보유한 삼성은 김영덕감독의 소심한 경기운영 탓에 다잡았던 경기를 놓친 꼴이었다. ‘84년 당시 삼성에는 김시진, 김일융 외에도 황규봉, 권영호 등 타팀에 가면 1, 2선발 자리를 꿰찰 수 있는 똘똘한 투수가 많았다. 이에 반해 롯데는 최동원, 임호균 외에 믿을만한 투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김영덕감독은 상대 에이스를 피해가기 위해 김일융을 제2선발로 돌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최동원에 당했던 삼성은 이후 선동열에게 또한번 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당시 국민학교 6학년생이었던 나에게 이날 경기는 지금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시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 유두열의 타구가 좌측 펜스에 꽃히며 롯데팬들이 열광하던 모습, 9회말 삼성의 마지막 타자 장태수가 엉거주춤한 스윙으로 아웃되고 최동원이 승리를 확인하며 포효하던 모습. 침울한 표정의 삼성의 덕아웃.


이 장면은 이후로도 가을만 되면 삼성팬들을 데자뷰처럼 괴롭혔다. ‘져주기 경기’의 죄값은 한 세기가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다 치뤘다. 영남의 대표적인 야구도시 부산과 대구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두 팀. “우리가 남이가~”라는 특유의 정서를 내세우지만 내심 영남 라이벌의 자존심 싸움은 더 지독하다. 그 시작은 1984년이었고, 삼성과 롯데의 악연은 세월이 흘러 1999년에 다시 한번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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