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라기 보단 철학자나 문학가와 더 어울릴 성 싶다. 건축가 승효상의 이름은 예전부터 들어왔건만, 이제서야 그를 알게 된 것이 아쉽단 생각이 든다. 하긴 제대로 된 건축을 위해서는 철학과 미학, 문학 등 인문학의 모든 것이 녹아들어가야만 할 것이기에 훌륭한 건축, 뛰어난 건축가가 만들어지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가 새삼 느끼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고건축들이 소개되어 있어 반가웠다. 회재 이언적이 유유자적함 속에 결기를 세웠을 경주 독락당,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다워 늘 가고싶은 소쇄원과 병산서원은 물론, 사찰 건축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영주 부석사와 순천 선암사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승효상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했다. 이 책의 제목인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 한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이 모든 오래된 것들은 이런 이유로 아름답다 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가 아름다움으로 당연히 치환되진 않을 것이다. 박노해 시인이 말했듯 자기 시대의 풍상을 온몸에 새겨가며 옳은 길을 오래오래 걸어나가는 사람. 숱한 시련과 고군분투를 통해 걷다가 쓰러져 새로운 꿈이 되는 사람. 이런 오래된 사람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승효상의 건축여행 속에 동행한 건축들은 모두 오래되었고, 시련의 시간을 견뎌내 빛나는 얼굴을 갖게 된 것들이다. 그의 글을 읽으며 특히 비움의 공간인 마당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 선조들이 일군 모든 집들의 마당들은 불확정적 비움이었고,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우리에게 전해 준 아름다움이었다는 것.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서구 방식의 미학을 좇아 우리 전통의 마당을 없애버린 마당에, 서양인들은 우리 선조가 남긴 마당을 궁극의 아름다움이라 칭송하고 있으니 승효상 건축가가 황망함을 느낄 만도 하다. 우리 건축이 지닌 불확정적 비움의 미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다시 읽어보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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