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병률에 대한 독자의 기대치를 반영한 것이라 보면 될까. 이병률 대화집이라는 것이 나왔다. 제목은 <안으로 멀리 뛰기> 다. 이해가 될 듯 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병률과의 대화를 엿듣다 보면 자연스레 귀가 트이리라 생각하며 책을 펴들었다.
이 책은 북노마드 대표로 책을 만들고 있으며 틈틈이 미술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윤동희라는 사람이, 시인이자 여행작가이며 역시 책을 만들고 있는 이병률이라는 사람을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철저히 이병률이라는 한 사람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만은 그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병률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가 펴낸 세 편의 여행산문집을 읽어본 인연으로 그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 책을 읽어보게 됐다. 아직 그의 시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여행작가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글과 사진을 보여주었기에, 글이 아닌 진솔한 대화 속에서 이병률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품으면서.
잘은 모르겠다. 그를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질문들이 많다. 스치듯 우연히 만나 소주 한잔 마시면서 나눌 수 있는 대화는 분명 아니다. 이병률의 깊은 곳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겠지만, 그래서 조금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조금 아는 사이끼리 한걸음 더 나아가 좀더 깊어지는 관계. 윤동희와 이병률은 이번 대화집 발간을 위한 몇차례의 회합을 통해 이전보다 깊어졌으리라 생각해 본다.
다시 책을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책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대신 이병률의 시집을 사서 읽어보겠다. 이병률 대화집 <안으로 멀리 뛰기>라는 책이 '별로'라는 얘기는 아니다. 먼저 이병률의 시를 읽고, 그의 문학 세계를 살짝이라도 맛본 이후에야만 그 둘 사이의 대화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이병률의 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는 인간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건 인간이 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좋은 사람으로 사는 건 관심 없는데 인간적으로 사는 거에 비중을 많이 두는 이병률이라는 사람. 이 세상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랑하면 자야 하잖아요. 손 잡고 자는 거 말구요. 잠도 감정의 한 영역이니까. 하지만 그러면서 확 가까워지는 느낌, 뭐든 괜찮을 것 같은 느낌. 난 그게 싫더라구요. 서로에게 쉬어지는 느낌이죠. 동물적인 상황을 겪고 나면 원래 다 그럴까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병률의 생각은 이렇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듯 하면서도 또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으며 잠시 옛 추억에 빠져 들었다. 경북 봉화의 어느 깊은 산골이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에 취하고, 카세트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에 취하고, 한잔 두잔 나누는 술에 취했던 것이 불과 몇 해 전인데 꽤나 오래 전 일처럼 느껴진다. 대화는 모름지기 그렇게 해야 제 맛인데,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에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래서, 조금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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