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 같다. 이병률이라는 사람을 안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의 글과 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시인이자 방송작가로 알려져 있는 이병률의 산문집 두 권을 읽었을 뿐,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다지 많지 않은 데 말이다.
그의 책에는 여전히 서문도 없고, 에필로그도 없다. 그 흔한 차례도 없고, 페이지도 매겨지 있지 않다. 한편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 마음데 드는 구절을 만나면 친구에게 "몇 페이지 몇번째 줄, 한번 읽어보라"고 추천해 줄 수도 있어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만들었고, 오랜 작업 뒤에는 어떤 마음이었는 지 독자들에게 그 속내를 털어놓을 법도 한 데, 그는 한결같이 요지부동이다.
그래도 상관 없다. 혹여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작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해도, 한 구절을 여러 번 읽어도 도무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일처럼 느껴진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저 어렴풋하게나마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곳을 여행하고, 누구를 만나고 헤어지는 지를 한발짝쯤 떨어져 지켜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하므로 이병률이 얼마나 대중적 인기가 있는 작가인 지도 내겐 별로 중요치 않다.
누군가 날 두고 이병률과 닮았다길래 한참을 생각해 봤다. 까칠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내가 까칠하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데, 이병률 작가 역시 자신을 소개하면서 "사람한테 다정하면서 사람한테 까칠하다" 표현했다. 절묘하다. 아흔 아홉가지가 나와 다르다 해도 이 한가지 닮은 것만으로 나는 이병률과 닮은 사람이란 게 확실해졌다. 그래서 기분이 참 달달해 졌다. 세상에서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서, 그리고 그가 꽤나 유명하고 인기 있는 사람이라서.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그리고 새로 나온 <내 옆에 있는 사람> 셋 중에서는 처음이 제일 나았다. <끌림>을 읽으면서는 정말이지 뭔가에 확 끌리는 느낌이 분명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곧이 곧대로,읽히는대로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그의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지러워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의 세번째 여행산문집 출간을 앞두고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처음 예약구매란 것도 해 봤다. 국내여행의 경험을 글과 사진으로 엮어냈다는 이야기에, 그가 어떻게 여행지의 풍광을 풀어낼 것인지도 궁금했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사람과 사연과 사색으로 채워진 여행지들은 지명만 내어주고 있을 뿐, 각각의 도시가 갖고 있는 선명한 이미지는 생략되어 있었다.
그곳은 문경일 수도 있고, 제주일 수도 있고, 서울 한복판일 수도 있고, 그의 고향 제천일 수도 있다. 그것이 비단 그곳에서만 존재해야 할 필연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이병률의 여행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나올 지도 모를 그의 다음 여행산문집에는 그만의 필체로 그려낸 여행지의 풍경이 좋은 내음과 함께 눈앞에 펼쳐졌음 좋겠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과 사진은 여전히 효용가치가 있다. 이 따위 투정마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만큼 공감할 수 있어서 좋고, 때로는 그와 함께 어느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아, 혹은 파도 치는 한적한 시골 바닷가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떠들어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폐부 깊숙히를 찔린 것처럼 찰라의 날카로운 울림을 안겨주는 그를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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