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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by 푸른가람 2015.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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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를 멈춘 지가 오래인 지라 김영하라는 이름난 소설가의 작품을 여지껏 한 권도 읽어보질 못했다. 열 편이 넘는 소설을 펴낸 그는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계에서 이미 좋은 평가를 받은데다 큰 대중적 성공까지 이루었다. 여러 주목할 만한 강연과 대담, 그리고 지상파TV 출연까지, 어찌보면 이룰 것은 다 이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영하의 산문집 <말하다>는 소설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김영하에게서 듣는 그의 삶, 문학, 그리고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다.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화천의 전방지역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도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한국 문학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과정에 드라마틱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특별한 구분의 잣대는 없는 듯 하다. 다만 내면을 지켜라, 예술가로 살아라, 엉뚱한 곳에 도착하라, 기억 없이 기억하라와 같은 네 가지 조언들에서 굳이 거창한 문학이 아니더라도, 좋은 글을 쓰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들은 조금의 위안을 얻고, 희망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예전에 있었던 대담과 강연을 기록한 것들이기에 책은 비교적 쉽게 읽혔다. 물론, 지금껏 소설가 김영하의 이름난 소설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기에 책 속에 자주 소개되어 있는 소설의 내용들을 쫓아가 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아쉬움은 있지만, 또 그런 결핍은 김영하식 독서법을 따라 차근차근히 해결해 보려 한다.

 

책에 실려 있는 수많은 글과 이야기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그가 2014년 12월에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강연했던 '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근육'이 가장 크게 가슴을 쳤고, 앞으로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영하는 우리에게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살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학군단 생활에서의 개인적 경험과 나치의 수용소와 구 소련의 악명 높은 수용소 군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비관적 현실주의를 통해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며 자신한다.

 

우리는 경제성장율이 고도성장기에 비해 반토막은 커녕, 1/4 토막이 난 2015년을 살고 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 역시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뿐이라고 그는 냉철하게 지적한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또하나, 그가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육체의 건강을 위해 근육을 키우려 애쓰듯, 행복한 삶에 좀더 가까이 가려면 감성근육을 키우려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많은 돈을 벌거나 명예를 쌓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감각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깊게 느끼는 삶, 남과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내면을 구축하는 삶, 이런 삶의 방식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게 되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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