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느낌을 남기려 한다. 4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의 분량 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은 성찰과 사색의 우주가 이 책에 담겨 있기에, 감히 나의 부족한 지식과 지혜로 풀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담론> 이라는 제목 만큼이나 무겁고 중요한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신영복 교수가 성공회대학에서 진행했던 마지막 강의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의 1부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이라는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앞 부분은 시경, 초사,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이름난 동양의 고전들을 총망라하고 있고, 뒷 부분은 20여년의 옥살이를 통해 깨닫게 된 인간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 가고 있다.
신영복 교수는 교도소 생활을 '나의 대학시절'이라 표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인 그가 징역살이를 두고 대학시절이라 일컫는 이유는 무얼까. 그에 대한 답은 바로 <담론> 이라는 책 속에 있다. 어렵게 느껴지는 동양의 고전들에 대한 통찰은 아무리 그가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지 20년 20일만인 1988년 8월 15일에 출소했다. 형언할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무기징역형의 중압감과 기약없는 출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재소자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 역시도 수시로 고민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왜 자살하지 않고 기약 없는 무기징역을 살고 있나 하는 질문에 그는 '햇볕'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다고 한다. 그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절정이었다는 그의 이야기에 절로 가슴 한켠이 먹먹해짐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은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 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교훈입니다. 최고의 인문학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욕망과 소유의 거품, 성장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고, 우리의 삶을 그 근본에서 지탱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뼈대를 튼튼히 하고 사람을 키우는 일,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고 희망의 언어입니다."
신영복 선생이 이 책을 펴낸 뜻을 넌지시 짐작해 보게 된다.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인내하기 힘들었던 무수한 시간을 인문학 공부와 인간에 대한 성찰로 버텨낸 것 자체도 훌륭한 일이지만, 어지러운 시대를 치유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방도를 '사람'에서 찾은 것 또한 그다운 해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어렵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담론에 귀 기울여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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