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여유로운 금요일 저녁 시간. 모처럼 책이나 좀 읽어볼 요량으로 일부러 퇴근을 조금 늦췄다. 사무실에 불은 하나둘 꺼져가고, 창문 밖은 불밝힌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다들 바쁜데, 나만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 뭔가 특혜를 받은 느낌마저 든다. 이런 것이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사뒀던 몇 권의 책 중에 무작정 손에 잡히는 한권을 집어 들었다. 일러스트 작가 박정은의 일러스트 에세이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는 쉬지 않고 단숨에 읽을 정도로 편한 책이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림과, 간결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글들이라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녀의 글들이 심도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거나, 철학자나 성인의 글처럼 큰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글은 지극히 일상적인데다 평범하다. 어떤 글은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함과 특출나지 않음이 나는 좋다. 많이 아는 체, 잘 난 체 하지 않아서 불편하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글을, 정감있는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 많이 공감할 수 있었고, 비슷하게 닮은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서 따스한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 책을 가까이 두고 자주 펴보게 될 것 같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박정은 작가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사람이 세상에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소하지만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조용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에게 조곤조곤 속삭여주는, 그런 사려깊은 오래된 친구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녀가 가진 그림 솜씨는 부럽기만 하다. 어떤 것이나 재주 없기는 매한가지지만 특히나 그림에는 소질이 전혀 없는 나로선 샘이 날 정도다. 일러스트 박정은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위안을 얻었던 많은 독자들처럼 나 역시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글에서처럼, 그림에서도 그 사람의 성품과 마음 씀씀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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