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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by 푸른가람 201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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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정여울은 베스트 셀러 작가다. 굳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이 유명한 책의 지은이란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선입견이 작가 정여울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었음을, <그림자 여행>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림자 여행'이라는 제목이 감성을 자극한다. 그저 어렴풋하게 추축했던 것처럼 그녀가 말한 '그림자'란 저마다의 마음 속에 드리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마음들을 지칭한다. 고로, 그림자 여행은 우리들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는, 심리학적 진단이 곁들여진 재미난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정여울 작가가 마음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 자신이 상처가 많아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내 안에 빛이 있으면 감추고 있어도 스스로 빛이 난다고 하지만, 그 빛의 뒷편에는 그만큼의 크고 선명한 그림자가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삶을 살아도 그림자는 생기게 마련이지만, 보통 우리는 그 그림자를 애써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의식을 조작하기도 하는 것이다.

 

내면의 상처를 직시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만 성립한다면, 그 그림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형태와 농담이 다양할수록, 그 사람의 인생도 풍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책 속에 담긴 수많은 글 가운데 유독 마음을 치는 것이 있다. 내 삶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일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된 이 글은 왜 한번도 자본가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자본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 지, 왜 한번도 권력의 중심에 서 보지 못한 사람들의 권력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인 지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그녀는 레나타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통해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의 신화는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의 주체적인 선택이었다고 믿었던 것들이 어쩌면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의 시스템이나, 혹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언의 압력에 굴복한 수동적인 적응은 아니었는 지 되물어 보고 있다.

 

나 또한 그 질문에 온전히 나 스스로의 선택이었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그녀의 주장이 조금은 과격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누린 적이 없었다. 결국 잘못된 현실 또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니 네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무서운 장치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결국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다. 그녀는 결코 우리에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냉소와 패배감만을 가르치려 하진 않는다. 오히려 대학생들이 질소 과다포장 문제를 비판하며 과자 봉지 만으로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넜듯,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에 공감하고 연대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림자 여행'을 통해 작가 정여울이 얘기하고 싶었던, 우리 독자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가치있는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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