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어른'이라 칭송받는 채현국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이후로 세간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 또한 내겐 큰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다.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쓴 맛이 사는 맛>이란 책에 끌렸던 것 역시 채현국이란 인물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것에 철저히, 그리고 전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다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들을 '팍팍한' 시대라 얘기한다. 지표로 보자면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우월한 경제적 수준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초등학생으로부터 팔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하루 각자의 '고(苦)'의 늪에서 허덕인다. 살림살이는 어렵고,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젊은 세대들은 연애, 결혼, 육아를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인간사에서 삶이 고달프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대한민국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했던 1990년대의 황금기에도 누군가는 먹고 살기 힘들었을 것이고, 생활고로 삶의 끈을 놓아 버린 이도 부지기수였다. 사회적 불평등은 그때나 지금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 없다.
다 같이 어려운 시대였지만, 유독 갈수록 세상살이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데에는 이 책의 지은이 정운현이 지적하듯 '어른'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어서,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해서, 젊은 이들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많이 해서 '어른'이 아니라, 나 또한 저이처럼 나이를 먹어가야겠구나 하는 목표나 삶의 지향점이 되는 존재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사실 어른이 되기는 어렵다. 내가 살아온 길이 정답인양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주위 사람들을 가르치려만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 수구화되는 늙은이는 어른이 아니라 '꼰대'에 불과하다. 달고 쓴 인생의 많은 경험들이 숙성되어 넓고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없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 노인이 많은 사회에는 불행히도 희망이 없다.
내가 곁에서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치켜세우는 글은 솔직히 불편하다. 지은이 정운현 역시 채현국이라는 인물을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보지 못했기에 그의 시선이 편향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가 지나온 길이 온전히 올바르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칭송의 끝에는 반드시 감쳐진 이면이 드러나기 마련일 것일테니 시대의 어른 채현국에 대한 검증은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쓴 맛이 사는 맛이란 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쓴 것이 몸에 좋듯, 인생의 쓴 맛을 많이 본 사람이 그만큼 깊이 있는 내면을 가질 가능성은 높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수많은 일화들, 채현국이 걸어온 인생 역정처럼만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 더를 바라는 것 또한 욕심이겠지만, 희망의 촛불이 점점 사위어져 가는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넉넉한 품을 가진 '어른'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또한 잘 늙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당연한 것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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