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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물소리 속에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대원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좋은 풍경에 마음을 뺏겨 점심 시간이 지난 줄도 몰랐다. 한적한 시골에 이렇다할 식당도 없어 할 수 없이 대원사까지 주린 배를 부여잡고 오는 수 밖에 없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식당에서 먹었던 산채 비빔밥의 맛깔스러움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든다. 이제서야 청아한 계곡의 물소리와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산자락에 걸린 흰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큰 도로를 지나 대원사 까지는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와야 한다. 다행히 포장이 잘 되어 있어 차로 다니기에도 무리가 없지만 이왕이면 시원스런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대원사를 떠올리면 먼저 이 시원스런 계곡이 .. 2012. 4. 16.
지리산 계곡 내원사에서 찰라무상의 나를 내려 놓다 뭔가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것은 아니다. 내원사란 절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양산에 있는 천성산 내원사가 제일 먼저 나온다. 산청 내원사에 대한 글들은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절이고,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유명한 절도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기어코 이 작은 절을 찾아 가보려 했던 것인 지도 모르겠다. 큰 도로를 빠져 나와 좁다란 산길을 따라 내원사로 가는 데 바로 옆의 계곡이 온통 흙탕물이다. 지금은 큰물이 질 시기도 아닌데 맑은 물이 흘러야 할 계곡이 이 모양일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절로 향하는데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공사가 한창이다. 펜션을 새로 짓기도 하고 야영장을 손보기도 하고 본격적인 행락철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손길들이 분주하다. 어지러운 공사의 현장은 내원.. 2012. 4. 14.
인생을 낭비한 죄 -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다 이 책에는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꾼 수행자 스물 여섯 분의 귀중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책 표지의 오래 닳은 발우 사진이 큰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빈 발우, 수행자의 밥그릇을 보고도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큰 가르침은 어찌 보면 책 속에 있는 것도, 고요한 산사의 선방에 있는 것도 아닌가 보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느냐 아니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 이 시간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큰 지혜를 가진 고승대덕의 수행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고난한 수행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행동을 바르게 하면 내 삶도 옳고 바른 곳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사는 법.. 2012. 3. 13.
비암사에 아니오신듯 다녀가소서 비암사는 크지도 않고,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찰도 아니다. 그래서 지난해 충청도 일대를 돌아다녔을 때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행선지에서 뺐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마음이었는 지는 지난해 봄에 찾았던 개심사, 그리고 마침내 지난 겨울에 찾았던 비암사를 직접 다녀오고서 깊게 깨우치게 됐다. 입구에 들어서면 절이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비암사는 규모가 작다. 극락보전, 대웅전, 명부전, 산신각 등 당우들이 단촐하니 사각형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구석구석 어디를 다녀봐도 깔금하게 잘 정돈된 모습에서 보살님들의 부지런함을 짐작할 수 있다.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이 드는 절이라서 참 좋다. 비암사를 찾았던 그날의 날씨도 그러했다. 2월 중순이었지만 그날은 마치 시간이 한달이나.. 2012. 3. 10.
바람이 지은 집 절 세상 모든 절집은 바람願이 지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바란다. 흔히들 '이것만 이루어지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 그 바람은 무망하다. 바람의 목록은 무한정 늘어난다. 비루한 욕망에서 해탈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행복해지기 위한 바람이다. 그 간극은 아득하여서 야차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에 걸친다. 그 사이에서 수많은 불보살이 우리 곁으로 왔다. 절집이 우리 곁으로 왔다. 나는 절을 좋아한다. 불심이 충만한 신자도 아니건만 목적지 없는 떠남의 끝에는 늘 절이 있었다. 그런데 절에 갔다고 해서 법당에서 절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드물다. 엄밀히 말하자면 절 자체 보다는 절과 속세의 경계를 그어 주는 듯 상쾌한 절의 숲길과 오직 바람이 울려주는 풍경 소리만이 고요함을 일깨우는 그 느낌.. 2012. 3. 10.
논산 개태사에서 친근한 느낌의 부처님을 만나다 충남 논산시 연호면 천호리 천하산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연관이 있는 절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936년 황산군(지금의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왕건이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 덕분이라 여기고 이 곳에 개태사를 지었다고 한다. 여느 사찰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국도 변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해 있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산사의 고요함을 맛보기는 어렵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수고를 덜 수는 있을망정 절에 와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터에 비해 당우들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아 조금 휑한 느낌도 받게 된다. 법상종 사찰이라는 설명도 있고 조계종 소속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일주문과 극락전에 걸.. 2012. 3. 1.
새해 첫날, 고운사에서 절하다 새해 첫날에 의성 고운사를 찾았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고운사를 찾아 왔지만 이날처럼 고운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건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해 첫날이라 부처님 앞에 무릎꿇고 절하러 오신 분들이 저 말고도 또 많았던 가 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절이지만 그래도 저 혼자 고즈넉한 산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욕심은 또 여전합니다. 사람들과 차량의 번잡함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고운사는 모처럼 조계종 본사에 어울리는 분주함을 모처럼 되찾은 것 같아서 저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절하는 마음은 누구나 간절한 것일테니까요. 절을 자주 찾아다니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무엇이 가로막았.. 2012. 1. 3.
비에 갇혀있던 운문사에서 주인이 되다 여행을 다닌다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날씨에 민감한 편입니다. 물론 흐린 날은 흐린대로, 비가 오는 날은 또 그런대로 맛과 정취가 있는 법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란 하늘이 여백을 채워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기왕의 여행길이 화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욕심입니다. 그래도 그런 날이 있습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고, 맘에 드는 사진 한장 건질 것 같은 기대조차 들지 않은 그런 날이라도 어디든 떠나고 싶은, 떠나야만 하는 그런 날도 있는 법입니다. 무작정 일을 접고 운문사로 떠났던 어느 여름날도 그러했습니다. 한두번 가는 것도 아니요, 운문사에 푹 빠져 있는 것도 아닌데 정처없는 떠남의 행선지가 운문사였던 것도 묘한 일입니다. 인연이라 부릅니다.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은 그저 인.. 2011. 12. 18.
관세음보살의 미소가 따사로웠던 경주 기림사 기림사는 이번이 두번째 였습니다. 문무대왕릉에서 일출을 보느라 몸이 꽁꽁 얼어버린 날이었습니다. 기림사를 처음 찾았던 지난해 여름날의 풍경( 물소리, 새소리가 어울어져 더욱 싱그러운 기림사 숲길 : http://kangks72.tistory.com/706 )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바뀐 계절을 따라 기림사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좋았던 느낌만은 여전합니다. 온통 푸르렀던 기림사 숲길의 나무들은 어느새 잎들을 다 떨어뜨렸습니다. 여름날 더위를 잊게 해주었던 고마운 숲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빈 여백을 파란 하늘빛이 대신해 주고 있습니다. 이 좋은 숲길을 조금 걸어가다 만나게 되는 천왕문 앞의 비스듬히 뻗은 소나무와 대나무의 푸른 빛은 언제나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기림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두가지 있습니.. 2011. 12. 12.
굽이굽이 걸어서 만나는 늦가을의 불영사 몇해 전이었던가요. 어느 일간지에서 붉게 타오른 불영계곡의 단풍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경이로움이었습니다. 그저 환상적이라는 말로는 표현 조차 안되는 그런 느낌이었지요. 그날의 감흥에 이끌려 불영사를 몇번이나 다시 찾았지만 아쉽게도 계절을 비켜가는 것인지, 제 눈에 먼지가 껴서인지 늘 뭔가 아쉬움이 남곤 합니다. 울진은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동네입니다. 어쩌다 팔자에도 없는 8개월간의 근무를 한 적이 있어서인지, 그리고 그 세월만큼 많은 추억을 안고 돌아와서인지, 늘 애착이 가고 아련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싶은 여행길에 울진을 행선지로 잡았던 것도 다 그런 이유였을 겁니다. 불영사를 생각하면 절 보다는 절에 이르는 십여분 남짓의 숲길이 늘 .. 2011. 11. 25.
비와 안개에 젖은 늦가을의 부석사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달려 부석사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지기 전에 부석사의 고즈넉함을 즐기려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운이 좋으면 부석사에서 멀리 태백산맥 너머 떠오르는 붉은 일출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따금씩 내리는 빗줄기는 잦아들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이면 모처럼 공짜 구경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부지런하신 매표원 아저씨는 빈틈을 허용치 않습니다. 매표소를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부석사의 대표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은행나무 가로수길입니다. 바로 옆으로는 잘 익은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과밭이 풍요로운 느낌입니다. 매년 결심을 하곤 합니다. '올 가을엔 노랗게 물든 부석사의 은행나무숲을 꼭 보고 말리라.' 그러나 매번 이렇게 때를 놓치.. 2011. 11. 20.
천불천탑의 사찰 운주사, 따스한 품과 같은 절로 남아주길.. 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1년만에 다시 운주사를 찾은 것도 가을이었습니다. 어느 때고 나쁘지 않겠지만 구름이 머무는 절, 운주사는 가을이 제격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 절은 말로는 참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매번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듭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오후 느즈막히 운주사에 왔었습니다. 가을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 없었고, 운주사 하늘에 머물러 있는 하얀 구름이 절 이름과 참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절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교차하기도 했었네요. * 천개의 불상과 석탑으로 가득찬 화순 운주사( http://kangks72.tis.. 2011.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