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

비 내리던 날의 은해사 풍경

by 푸른가람 2010. 5. 28.
728x90

부처님 오신 날에 절에 많이들 가보셨나요? 저같은 경우 카메라 둘러매고 절에는 자주 가는데도 인파가 많이 몰리는 부처님 오신 날이라든지 하는 날은 피하게 되더군요. 어린 시절 부모님, 친척 따라 석가탄신일날 절에 들러서 '절밥' 맛있게 먹었던 경험이 딱 한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굳이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날만큼은 절을 찾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뭐라 그럴까요. 오색찬란한 연등으로 한껏 치장한 절의 모습이 제가 마음속으로 그려놓은 '절다운 절'의 모습은 아니라고 하는 편협한 생각이 아직까지 남아있나 봅니다. 풍경소리가 마음을 울리는 고즈넉한 산사의 모습. 일주문을 들어서면 속세의 소리와 완전히 단절될 수 있는 온전한 형태의 독립적인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천 은해사는 제 맘에 쏙 드는 절입니다. '은빛 바다'라는 운치있는 이름을 가진 이 절에는 일반적인 형태의 일주문이 없습니다. 통상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법당에까지 수km의 숲길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만 은해사는 입구에 일주문이 아닌 큰 대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입장권도 팔고, 차량을 통제하기도 하는데, 은해사를 갈 때마다 참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번잡함을 피해 일부러 부처님 오신 날 다음날 은해사를 찾았습니다. 한두방울씩 떨어지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우산이나 비옷이 없으면 안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손에 우산을 들고, 카메라가 비에 젖지 않게 신경쓰다보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래도 모처럼 찾은 은해사 금포정 숲길은 특유의 푸르름을 간직한 채 절 반겨주었습니다.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걸어가다보면 보화루 입구의 다리에 이르게 됩니다. 다리 왼쪽으로는 절벽에서 쉼없이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 폭포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한여름 무더위마저 이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 한점 없는 고요한 날에 다리 오른편을 바라보면 시원스런 물줄기 속에 비친 소나무들의 반영이 그지없이 아름답습니다.



보화루를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빗속의 은해사 모습이 분주합니다. 전날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 단상 철거작업이 한창인가 봅니다. 비까지 내려 좀 어수선한 분위기네요.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내걸려 있는데, 한켠에 특별히 달아놓은 천안함, 금양호, 링스헬기 희생자 60위를 추모하는 연등이 이채롭습니다.



지난해 가을 은해사를 찾았을 때 한창 공사중이던 극락보전이 말끔히 새단장을 마쳤습니다. 극락보전에는 불교계 인사를 비롯해 소위 힘있는 사람들의 이름표가 걸려있는 연등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속세에서 누리고 있는 영화로움의 순서가 이 절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 한편 씁쓸한 생각이 들더군요.




일반 불자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연등들도 곳곳에 걸려 있습니다. 건강, 재산, 결혼, 취직 등 다양하고 간절한 바람들이 여기에 걸려 있겠지요. 잠시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가장 간절한 소망 하나는 무엇일까.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잠시 부처님께 빌어 봅니다. 연등 달지 않았다고 소홀히 하진 않으시겠지요? 그럴 거라 믿어 봅니다.




제가 은해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몇가지 있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입구에서 보화루까지 이르는 소나무숲길의 아름다움이 그 하나요, 전체적으로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또 하나요,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라는 게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은해사를 찾곤 하는데 아직까지 은해다원에서 차 한잔 마셔보지 못한 건 아쉬운 일입니다. 누구나 차 들어오셔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제대로 차를 마시는 다도를 알지 못하니 섣불리 혼자 들어가기가 아직은 꺼려지는 게 사실입니다. 다음번 은해사 방문 때는 차 향 가득한 은해다원에서 차를 음미해 볼 수 있도록 용기를 한번 내봐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은해사를 되돌아 내려 옵니다.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있지만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