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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121

생각이 나서 - 황경신 한뼘노트 "생각이 나서"란 말은 참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왜 전화했어? 혹은 어쩐 일이야? 라는 물음에는 빙긋 웃으며 "그냥...생각이 나서..." 이런 대답이 제격이다. 얘기하려면 정확한 이유를 대지 못할 것도 없지만, 또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는 사이 같아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질 것 같다. 라는 따뜻한 제목의 에세이집을 펴낸 황경신이라는 이름에서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아주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PAPER라는 잡지를 사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의 앞뒤 어디에선가 분명 그녀의 이름을 봤던 것 같다. 황경신의 글에서는 여전히 PAPER 냄새가 난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하는 얘기니까 아예 향기가 난다고 해 볼까? 요즘 이런 류의 책들은 흔하다. 사진과 글이 적당.. 2015. 8. 21.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저명 작가는 여행기를 어떻게 쓸까? 하는 궁금증에 주저없이 이 책을 골랐다.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가 이 책의 제목이다.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의 제목을 고른 것은 아니겠지만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한 제목 선택인 것 같다. 책 표지에 실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진이 이채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녹이 슨 고철덩어리가 된 전차(혹은 장갑차?) 위에 호기롭게 올라 서 있는 그가 입은 청바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는 초원의 푸른 빛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나이는 들었으되, 아직 여전히 청춘이구나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하긴, 이 책에 담긴 글들이 대부분 1990년대 초, 중반에 쓰여진 것들이니 젊은 시절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 시절 그의 감성.. 2015. 8. 10.
작은 집 큰 생각 -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과 노은주의 책을 또 읽게 됐다. 얼마 전 읽었던 라는 책이 참 마음에 들어서다. 최갑수와 이병률의 그랬듯, 이른바 한번 '필이 꽃히면' 그 작가의 책은 가리지 않고 읽게 되는 것 같다. 지금껏 그 선택에 후회해 본 적은 없으니, 사람과 사람의 좋은 만남이란 것이 비단 얼굴을 마주 하고, 얘기를 나눠야만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임형남+노은주 라는 표현이 참 재밌으면서도 정겹다. 이렇듯 서로를 마치 하나인 것처럼 존중하며, 때로는 의지하며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일일텐데, 아마도 이들 부부는 천생연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서로의 마음이 같으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끼리 시너지 효과를 거둔, 아주 긍정적인 사례로 보아도 좋겠다. 이 책의 초.. 2015. 5. 31.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 만약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다시 태어난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건축가로서의 삶이다. 물론 현세의 나의 능력과 재주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란 것도 잘 안다. 그러기에 빼어난 건축을 자유자재껏 만들어 내는 뛰어난 건축가들과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하나의 풍경이 된 명품 건축들을 보며 경탄을 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자란 것을 채우러 오래된 건축들을 보러 다니곤 한다.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아야 건축이 지닌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지 기약은 없다. 하지만 끊없이 이어지는 발걸음을 통해 예기치 못했던 놀라움과 경탄은 물론 치유의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으니 마치 더듬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곤충마냥 깜깜이로 떠나는 답사 여행이 고난의 길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처럼 문외한이.. 2015. 5. 25.
투명사회 -투명성의 전체주의적 본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 '투명사회'는 내가 읽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두번째 책이다. '피로사회'라는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하지만, 피로사회라는 제목에서 그가 던져주고 있는 화두가 단적으로 드러났듯, 투명사회 역시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단적인 특징 중 하나를 그는 '투명'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일견 생각해 보면 '피로'라는 단어에 비해 '투명'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음침한 뒷골목의 어느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 밝고 오픈된 공간으로 옮겨진 듯한 기분이다. 기존의 비밀스런 결정과정과 거래들에서 많은 비리가 양산된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던 과거의 관행들이 어쩌면 우리를 '투명사회'의 강박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 2015. 5. 18.
그림자 여행 - 내가 꿈꾸는 강인함 내가 아는 정여울은 베스트 셀러 작가다. 굳이 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이 유명한 책의 지은이란 것 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베스트 셀러' 작가라는 선입견이 작가 정여울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었음을, 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림자 여행'이라는 제목이 감성을 자극한다. 그저 어렴풋하게 추축했던 것처럼 그녀가 말한 '그림자'란 저마다의 마음 속에 드리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마음들을 지칭한다. 고로, 그림자 여행은 우리들 내면을 고스란히 들여다 보는, 심리학적 진단이 곁들여진 재미난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정여울 작가가 마음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 자신이 상처가 많아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내 안에 빛.. 2015. 4. 27.
소도시 감성여행 - 12가지 테마로 즐기는 소도시 여행의 모든 것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높아질수록 여행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덕분에 여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그럴 재주와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글과 사진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정보를 토대로 실제로 여행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에세이나 여행 정보를 담은 책들은 나름 효용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겠다. 떠날만한 상황이 못되는 사람들에게도, 떠나고 싶지만 정작 어디로 어떻게 떠나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런 종류의 책들은 때로는 위안이 되어 주기도 하고, 훌륭한 지도나 나침반의 역할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 작가들인 염관식과 옥미혜가 펴낸 역시 그런 범주에 속하는 책이.. 2015. 3. 26.
쓴 맛이 사는 맛 -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이 시대의 어른'이라 칭송받는 채현국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이후로 세간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것 또한 내겐 큰 흥미로운 일이 아니었다.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이란 책에 끌렸던 것 역시 채현국이란 인물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것에 철저히, 그리고 전적으로 공감했기 때문이다. 다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들을 '팍팍한' 시대라 얘기한다. 지표로 보자면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우월한 경제적 수준을 누리며 살고 있지만, 초등학생으로부터 팔순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루하루 각자의 '고(苦)'의 늪에서 허덕인다. 살림살이는 어렵고,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다. 젊은 세대들은 연애, 결혼, 육아를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 2015. 3. 24.
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민이 보고 겪고 느낀 우리 현대사 55년 대학 시절에는 학생 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했고, 그 이후는 칼럼니스트와 TV 토론 진행자를 거쳐 국회에 입성했고, 진보 정권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에까지 올랐던 인물. 나름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거친 자연인 유시민의 눈에 비친 한국 현대사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를 통해 우리 현대사와 함께 치열하게 살았던 그의 55년을 되돌아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한번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역사학자는 물론, 역사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그런데, 어떤 특정 시대나 지역의 지나간 시간을 최대한 객관화시킨 역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는 지금까지 나의 의식 내부에 강력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수많은 역사를 접하고, 공부해.. 2015. 3. 22.
왜 그리운 것은 늘 멀리 있는 걸까? - 박정은의 일러스트 에세이 하루 한 장 일주일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여유로운 금요일 저녁 시간. 모처럼 책이나 좀 읽어볼 요량으로 일부러 퇴근을 조금 늦췄다. 사무실에 불은 하나둘 꺼져가고, 창문 밖은 불밝힌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다들 바쁜데, 나만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 뭔가 특혜를 받은 느낌마저 든다. 이런 것이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사뒀던 몇 권의 책 중에 무작정 손에 잡히는 한권을 집어 들었다. 일러스트 작가 박정은의 일러스트 에세이 는 쉬지 않고 단숨에 읽을 정도로 편한 책이다. 따뜻한 느낌이 드는 그림과, 간결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글들이라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녀의 글들이 심도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거나, 철학자나 성인의 글처럼 큰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으.. 2015. 3. 20.
철학자의 사물들 - 사물을 꿰뚫어보는 철학의 눈 철학자의 깊이 있는 통찰을 감히 읽어낼 수 있을까. 시인이자 비평가 장석주가 펴낸 철학에세이 을 읽고 나서 문득 느끼게 되는 회의감이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서른 개의 사물을 장석주 특유의 철학적 통찰력과 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장석주, 그는 1년에 무려 1000여권을 책을 구입하고 시간날 때마다 그 책을 읽는 것을 일상의 낙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독서광적이라 할만큼 놀라운 그의 독서량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에 이처럼 깊이 있고, 폭넓은 사유를 통한 사물의 통찰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나같은 이들로선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엄청난 내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이 책은 한편 사람을 질리게 하기도 한다. 닳아 뭉툭해지다가 나중.. 2015. 3. 13.
낯선 길로 돌아오다 - <벼랑에서 살다> 조은의 아주 특별한 도착 여행 에세이류는 언제나 나의 구미를 당기는 책이다. 이름난 작가의 책은 물론이거니와 제 아무리 '듣보잡'이라 한들 여행과 사진에 관한 책은 허투루 보아 넘기기 어렵다.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 조은 시인의 여행산문집을 아주 우연하게 발견하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구매했다. 2009년 11월에 초판 1쇄가 나왔으니 한참 지난 책이긴 하지만 오히려 조금은 오래된 사진과 글들을 통해서 이제는 사라져버렸을 지도 모를 국내 여행지의 매력을 되살려 추억해 볼 수도 있으니 더욱 좋다. 조은 시인의 여행 에세이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치 잘 숙성된 음식을 맛보는 것과도 같은 묵직함과 깊음이 묻어 나오는 글들이었으니. 역시 시인의 글은 뭔가 다른 것 같다. 그럼으로 인해 얼마간의 간격과 괴리가 느껴지기는 .. 2015.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