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을 그리다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해남 미황사

by 푸른가람 2011. 5. 1.
728x90


대구에서 만만찮은 거리에 있는 땅끝 해남으로 떠날 수 있게 해준 건 사진 한장 덕분이었다. 그 사진은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 사찰 해남 미황사의 모습이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붉게 빛나는 대웅전과 달마산의 기암들이 절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아~ 이렇게나 아름다운 절이 있었구나. 서너시간을 홀로 운전해야 하는 부담은 있었지만 그 멋진 풍경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면 그 정도 고생은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욕심만 앞섰지 꼼꼼히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 모처럼만의 나홀로 여행의 자유로움이 지나쳐 '바람따라 구름따라' 식의 무계획은 일정 전체를 꼬이게 만들어 버렸다.

첫날에는 도중에서 지체하다 미황사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저버렸다. 잘 곳과 끼니거리를 찾아 땅끝으로 허무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전에서 숨쉬던 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것 같은 땅끝의 바다 내음은 신선했다. 수백 km의 거리 만큼이나 내 마음도 저만치 내가 살던 곳에서의 기억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생전 처음 와 보는 해남에서의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짐을 꾸려 달마산 아래 미황사로 향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도로 근처에 있는 작은 저수지의 안개 속 풍경이 마치 그림 같았다. 똑딱이 카메라로도, 사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마추어 사진가라도 그저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어디에라도 잠시 차를 세우고 이 멋진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여차저차한 이유로 짧은 몇초간 고민을 하다 그대로 지나쳐 온 것이 지금도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어차피 그 황홀할 정도로 고요한 아침 풍경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으니 언제라도 그때의 풍경보다 아름답게 미화해서 기억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없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미황사는 대흥사에 딸린 말사로 작은 절이지만 남도에서는 가장 유명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는 절이기도 하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해도 이곳 미황사는 대웅전, 세심당, 요사채 등의 몇몇 당우만 남아 있었지만 큰 불사를 일으켜 지금과 같은 규모있는 사찰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누군가 미황사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달마산의 돌병풍을 뒤에 둘러치고, 해남과 진도 일원의 다도해를 앞마당 삼아 있다고. 미황사에 당도해 주변 사방을 둘러보면 그 표현이 정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처음에 올 때는 달마산의 돌병풍에 반했었지만 대웅전에 서서 저멀리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다도해의 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도의 이 작은 사찰이 지닌 매력에 누구라도 푹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미황사에 대한 느낌을 얘기하자면 '돌담의 절'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군데군데 오밀조밀하게 위치하고 있는 당우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기자기한 돌담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유독 돌담을 찍은 사진들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미황사 스님들은 절 구석구석의 터에서 직접 야채들을 기르고 있다. 스님들이 직접 키운 이 무공해 청정채소들로 비빔밥을 해 먹으면 몸에도 좋고 맛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들께서 정진 중이라 곳곳에 말소리와 발소리를 내지 말아 달라는 묵언 안내판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내딛는 발걸음 조차도 조심스러워 진다.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미황사를 찾는 분들이 많았다. 절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있고, 달마산 산행을 오신 분들도 많으신 것 같다. 절에 올 때마다 이런 단체 관광객들을 만나면 조금 난감해진다. 엄연히 사찰은 종교시설이고 수행을 하는 곳이니 스스로 삼가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텐데도 일행들의 왁자지껄한 함성이 경내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마땅치 않은 까닭이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또다시 이곳 미황사를, 땅끝 해남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다음 번에 미황사를 찾을 때는 해가 서해 바다의 깊은 품으로 안겨갈 때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 따뜻한 부처님 마음같은 미황사의 모습을 내 눈과 마음, 그리고 카메라에 온전히 담아오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