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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백련사에서 붉디붉은 동백꽃을 만끽하다

by 푸른가람 201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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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3월 중순쯤에 남도 쪽을 한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한달이나 늦어 버렸다.이미 동백꽃은 다 졌겠거니 생각했다.  하동의 섬진강가에는 벚꽃이 한창이었으니 붉디 붉은 백련사의 동백꽃은 1년 뒤에나 다시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게 왠걸 백련사 들어가는 초입에는 아직 나무마다 동백꽃이 한창이었다.





물론 바람에 흩날려 땅으로 떨어진 붉은 잔해들도 많았지만 여전히 강렬한 색채로 싱싱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 꽃들이 한가득이었다. 푸른 나뭇잎과 붉은 꽃잎의 대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백련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봄이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이 아름다운 동백나무숲을 제 정원처럼 가지고 있는 백련사는 참 복받은 절이 분명하다. 백련사를 오르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길을 만나게 된다. 이곳 강진과 백련사는 다산 정약용이라는 인물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생의 대부분을 이곳 강진에서 유배생활로 보냈으니 그의 한이 이땅 곳곳에 남아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백련사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가면 다산초당이 나온다. 절 구석구석을 오가며 사진을 찍고 있다보니 사찰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다산초당을 꼭 한번 다녀오시라 권유하신다. 애초에 행선지에 다산초당을 넣긴 했지만 다음 일정이 촉박해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곳 백련사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문성왕 1년(839)이 무염 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에 자리잡고 있는데 처음에 백련사로 불리다 이후 만덕사로 개칭하였다 다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한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과 왜구의 침탈로 폐사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나 세종대왕의 형님이신 효령대군이 이 곳에서 8년간 기거하면서 큰 불사를 일으켜 사세를 많이 확장했다고 전한다. 





백련사는 작고 소박한 절이다. 절터도 그리 넓지 않고 남아 있는 당우도 몇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내게는 지금껏 다녀본 그 어떤 사찰보다 크고 웅장한 곳이라 여겨진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절에서 지척으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강진만 때문이 아날까 생각해 본다.





물론 절에서 푸른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절은 여럿 있다. 내가 다녀본 동해안의 낙산사나 등명락가사도 역시 그렇다. 시원스런 동해의 푸른 바다와 이곳 백련사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강진만의 바다 풍경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좀더 포근하고 다정한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이곳 사람들의 심성을 꼭 닮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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