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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잘 지어진 단아한 사대부 집 같았던 무위사

by 푸른가람 201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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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줄이려면 사전에 꼼꼼하게 일정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 강진 백련사의 동백꽃에 푹 빠져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위사로 향했다. 같은 강진군에 있다는 것만 믿고 달렸던 것이 실수였다. 백련사에서 무위사까지는 한참 걸렸고 방향도 전혀 딴판이었다. 무위사는 행정구역상으로만 강진군에 속해 있지 사실상 영암군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월출산국립공원 표지판이 보이고 이내 무위사 주차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지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일주문에서 천년고찰의 고풍찬연함을 찾기는 어려웠다. 플래카드 뒤로 월출산무위사란 현판이 붙어 있다. 무위사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617년이 원효대사의 탄생년도라는 것이다. 아무리 원효대사가 고승이라고는 해도 갓난아이가 절을 창건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과거 무위사는 당우가 본절만 23동, 암자가 35개에 달하는 대사찰이었지만 이후 화재 등으로 인해 많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극락보전, 명부전 등 몇채만 남아 있던 것을 1974년 이후 많은 전각들이 세워지기 시작해 그 규모를 더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절에는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유달리 많다. 천왕문을 지나 극락보전에 이르는 곳에 새로 지은 누각이 있다. 이 누각은 아직 단청도 칠해지지 않았을 정도다. 새 목조건물에 단청을 칠하지 않는 이유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하니 얼마나 새 건물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넓은 마당이 인상적이다. 너무 넓어서 오히려 휑한 느낌이 들 정도다. 예전부터 이렇게 넓은 마당을 가진 절이었을까. 아니면 수많은 전란과 화재 등으로 그 많던 당우들이 다 소실되어 이렇게 빈 터만 남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마당이 나즈막한 야산과 맞닿은 곳에 국보 제13호인 극락보전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무위사 극락보전은 조선 세종 12년(1430)에 지어졌다고 하니 그 역사만 해도 600년에 가깝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는 못미친다고 하지만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오랜 역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원래 이 극락보전 벽에는 2점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본존불 뒤의 탱화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고 한다.





창건한 지는 천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많은 당우들이 지어진 지 얼마되지 않아 입구에서부터 새 절 느낌이 많이 난다. 정확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절이라기 보다는 단아하게 잘 지어진 조선시대 사대부 집에 들어선 기분이랄까. 넓은 마당에 서서 무위사 모습을 담아 보고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따라 다시 땅끝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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