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서울 출장길. 오가는 KTX에서의 4시간을 의미없는 잠으로 떼우기는 아쉬울 거 같아서 동대구역 서점에서 책을 골라봤다. 그의 팬이 되기로 마음먹은 최갑수의 책을 고르고 고르다 직원에게 검색까지 부탁했지만 역시 작은 규모의 책방이다보니 책이 없었다. 그나마 검색되는 2권도 이미 내가 읽은 책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에서 어떤 느낌을 나누길 좋아하기에 그런 스타일의 책을 찾아봤다. 두리번 거리다 '자전거 여행' 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은이를 보니 김훈이다. 김훈? 남한산성, 칼의 노래를 지은 소설가 말인가? 책 표지 다음장의 케리커쳐를 보니 내가 알고 있던 희끗한 백발의 김훈 작가는 분명 아닌 듯 보여서 동명이인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대구서 서울로, 서울에서 과천을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꼬박 책 한권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이미 가 본적이 있거나, 혹은 그저 언젠가 한번은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곳들을 사진작가 이강빈의 사진과 함께 정리해 놓았다. 2000년 8월 1일 초판이 발행되었으니 무려 11년 전에 이 글이 씌어졌고, 이 사진들이 찍혔다는 얘기 아닌가.
작가 김훈은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전국의 수많은 곳들을 자전거(그의 오랜 연인인 풍륜)로 여행하며 그 감흥을 이렇게 정리했으리라. 이제서야 이 책을 발견했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늦기 전에 이 시대 최고의 작가의 글을 읽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책 표지에 끼워져 있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우리시대 최고 수준의 에세이"라는 수식어가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진도가 잘 나가는 책이다. 어차피 무언간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의 눈과 발을 빌려 자전거 여행을 즐겁게 다녀왔다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역시 이 시대 최고의 글쟁이답게 그의 표현은 한편 문학적이요, 한편 철학적이라 나처럼 소양이 부족한 사람에겐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 부분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굳이 고생스런 자전거 여행이 아니더라도 난 언제쯤 아름다운 우리땅 구석구석을 사진과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날이 올 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날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또 카메라를 챙겨 어디론가 떠나봐야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동백꽃 피는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으로, 봄꽃 향기 퍼지는 섬진강가를 내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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