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절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심이 충만한 신자는 아닙니다. 그저 고즈넉한 산사에 갔을 때 느껴지는 포근함이 좋고, 절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과 잘 어울리는 누각과 당우들을 카메라에 담는 순간이 좋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몇해 전부터 작정하고 주변의 이름난 고찰들을 돌아보는 중입니다.
전국에 수백 수천의 절이 있을 겁니다. 이 중에서 어딜 가볼까 선택하는 것은 늘 고민거리입니다. 이번에 그 힘든 선택에 도움을 주는 책이 한권 나왔더군요. 인터넷에서 책을 검색하다 우연히 이 독특한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는 무언가에 홀리듯 바로 주문을 했습니다.
'절은 절하는 곳이다' 라는 알듯 말듯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소설가 정찬주가 남도의 작은 절 마흔 세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꽤 유명하신 분인 거 같은데 제겐 생소합니다. 전남 화순군 쌍봉사의 이불재에서 10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보니 불교에 대한 식견이나 스님들과의 인연도 꽤 깊으신 거 같더군요.
저와도 통하는 것이 꽤 많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 역시 관광객들이 넘치는 큰 절 보다는 조용히 사색할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는 작은 절들이 좋거든요.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남도의 이름난 대찰들은 대부분 빠져 있습니다. 물론 해남의 대흥사나 부안 내소사 같은 조계종 본사들도 소개하고 있지만 이 절들도 그 규모나 위세가 그렇게 위압적이지는 않은 곳이긴 하지요.
평소 관심이 있는 분야다 보니 금방 읽혀지네요. 이틀 만에 다 읽고는 다시 한번 더 찬찬히 곱씹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마흔 세곳의 절 가운데 제가 다녀온 곳을 손꼽아 보니 겨우 아홉 곳에 불과합니다. 조만간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던 곳도 여럿 됩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을 보니 어서 빨리 그 모습을 친견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짐을 느낍니다.
시(詩)란 말[言]과 절[寺]이 합쳐진 말이라고 작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고 보니 그렇네요. 그 시라는 것은 화려한 어휘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온전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묵언의 시가 어울릴 겁니다. 조만간 고즈넉하고 작은 절을 찾아 떠나봐야 겠습니다. 절은 절하는 곳이다. 이 책은 행복한 사찰 순례를 꿈꾸는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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