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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만해 한용운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백담사

by 푸른가람 200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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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백담사를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백담사는 여러가지로 유명한 곳인데, 최근에는(최근이라고 해봐야 벌써 십수년이 흘렀다) 전직 대통령이 속세(?)를 떠나 칩거했던 곳으로 세상의 이목을 한몸에 받기도 했었다. 원래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서 불교유신론, 님의 침묵 등을 집필한 곳으로 많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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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유로 백담사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워낙에 먼 설악산에 있다는 이유로 백담사를 직접 찾아오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TV화면속에 보이던 백담사 모습은 전형적인 산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찾아가는 길도 험하고 무척 험하고 가파른 산중에 있는 줄만 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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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산중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버스를 타고 십여분을 오르면 아주 편하게 백담사에 다다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백담사의 느낌이 조금 어색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넓은 하천이 펼쳐져 있고, 그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바로 백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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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평평한 평지에 절이 들어서 있다. 보통의 산사들이 가파른 지형 때문에 몇단의 층층식 구조로 만들어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곤 하는데 백담사는 그런 수고는 할 필요가 없다. 사찰 바로 옆을 흐르는 하천이 있어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큰 물지게를 지고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는 스님들의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실제 모습은 그렇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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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늦가을이라서 그런지 하천은 유량이 풍부한 편은 못되었다. 하천 바닥에는 수를 셀 수도 없을만큼 많은 돌탑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저 수많은 돌탑에 올려진 돌 하나하나에 이곳을 찾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이 담겨있을 것이다. 한여름이면 지금보단 훨씬 많은 물이 흘러 시원함을 안겨줄 것 같다. 하긴 여름철마다 집중호우로 인해 강원도 인제에 많은 피해를 안겼다는 소식을 듣곤 하는데 이곳도 그리 안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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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로 원래 신라 진덕여왕 1년(647년)에 자장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짓고 한계사라 불렀는데 이후 수차례 절이 불에 타 옮겨 짓다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게 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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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의 우리 역사만큼이나 백담사도 이런저런 사연이 많은 사찰인 것 같다. 현재 모습은 6.25때 불에 탄 것을 1957년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새로 지어진 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산사 특유의 고풍스러운 느낌은 나지 않는다. 만해기념관이나 만해 동상으로 인해 만해 한용운의 체취를 많이 느낄 수 있기는 하다. 전직 대통령이 묵었던 방임을 알려주는 안내문도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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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의 부속 암자로는 그 유명한 봉정암과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는데 이날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그 어느 곳에도 가보지 못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해 방문하기가 어려운 곳이었지만 요즘은 도로가 잘 뚫려서 동에서도 서에서도 찾기가 많이 수월해진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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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 가면 남들처럼 법당에 들러 절도 하고, 돌탑도 하나 쌓아보고 해야 하는 것인데, 아직은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는 없는 것 같다. 하기야 함께 간 일행들이 있으니 내 뜻대로 여유부릴 형편도 아니었지만. 다음에는 꼭 혼자서 다시 찾아보리라는 다짐을 하고는 일행의 꽁무니를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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