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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에세이

by 푸른가람 2018.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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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책이 화제다. 지난 6월 20일 출간된 이후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벌써 6쇄째 찍어내고 있으니 불황인 출판계에서 흔치 않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지은이가 이름난 작가도 아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5년을 근무한 20대의 이야기가 이토록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사뭇 궁금했다. 지금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그 주인공이다.

독특한 책이다. 주된 내용은 우울감에 시달리던 작가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백세희 작가가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것이 스물 두살 때였던 6년전이었다고 한다. 뭔가 특별한 처방이나 해결책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병원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의사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설명해주길 바랬지만 병원의 대응은 무미건조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대학을 졸업했고 출판사에 들어가 5년 동안 일을 했다. 겉으로 드러난 직장생활은 유별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우울함을 철저히 감추며 살았고, 남들에게 비난 받지 않기 위해 모범적으로 일했다.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자리에서는 녹음하는 습관도 생겼다. 대화 상대방과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 있었는지를 복기해 보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런 습관 덕분에 어쩌면 이 책을 펴낼 수 있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녀의 증상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기분부전장애다. 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지는 않으나, 가벼운 우울감이 빈번하게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혹자는 우울증도 아닌 사람이 호들갑 떤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누구나 살면서 그 정도의 우울한 감정은 느끼고 사는거 아니냐고, 혼자만 유별스럽게 큰 병에나 걸린 것처럼 상담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이도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책을 읽고 나서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게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치료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그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애매한 사람들에게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12주에 걸친 정신과 상담 치료 뒤에 그녀는 회사를 그만 두고 경주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2권에 계속)된다고 예고까지 했으니 어쩌면 그녀가 속편을 통해 완치 통보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목적은 많은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병인 우울증 치료에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보다는 왜 사람들이 속으로 곪아 가는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과 안타까움이 더 컸다. 그래서 비슷한 사람들과의 공감이 필요했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대신 직접 그런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존재를 드러내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다가와 함께 안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책의 서문에서 담담히 밝히고 있다.

정신과 치료에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그것도 치료 내용까지 상세히 기록하며)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가 힘든 줄 몰라서, 혹은 외부의 시선이 두려워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외면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은이의 용기가 더욱 빛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가 부디 그녀의 바람대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의심없이 편하게 지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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