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국제문제 전문 저널리스트 팀 마샬이 쓴 <지리의 힘>은 지리가 급변하는 현대사에 미치는 영향력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팀 마샬은 지리를 알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사를 결정한 한 요인 중 하나인 지리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전 세계를 10개의 관심 지역으로 나눠 지리로 인해 비롯된 분쟁, 경제 격차 등을 살펴 본다. 중국이 영유권 분쟁까지 일으켜가며 바다에 집착하는지, 러시아는 왜 크림반도에 목을 매는지, 미국은 어떻게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는지,유럽은 EU의 통합정신으로부터 와해되어 20세기 초와 같은 분열의 시대로 회귀할 것인지, 한국에 왜 사드가 배치되는지, 파키스탄 보다 인도가 더 빨리 성장하는 이유 등이 그것이다.
한반도 문제를 지리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끌렸었다. 최근의 북핵 사태가 첨예한 이슈가 되기 이전부터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늘 분쟁의 화약고로 인식되어 왔다.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일상처럼 느끼고 있는 남북간의, 혹은 북미간의 갈등은 전문가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골치거리가 아닐 수 없다.
팀 마샬의 해법 역시 특별한 것이 없다. 그는 한반도라는 문제를 풀 도리가 없다고 결론 지었다. 그냥 관리만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문제가 위험하지 않거나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이 세계에는 이 문제 말고도 관심이 필요한 시급한 일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한반도 문제에 관심있는 주변의 강대국들 또한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 또한 '불편한 진실'이다. 남한의 가장 큰 걱정은 서울과 수도권이 휴전선과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248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를 따라 1만여기의 북한 포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국과 미국이 상당수를 개전 초기에 파괴시킨다 하더라도 그동안이 서울이 불바다가 될 우려가 너무 크다는 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반도의 비극은 타의의 의해 역사가 낳은 산물이다. 1945년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따라 남북으로 분단됐다. 역사학자 돈 오버도퍼 교수의 지적처럼 38도선에 따라 이 나라를 남북으로 임의로 분할한 것은 여로 모로 불운한 일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같은 결정은 일본 항복에만 정신이 팔려 한반도에 대한 명확한 전략한 수립하지 못했던 미국 정부의 실책이었다.
한반도 북쪽에서 소련군의 이동이 포착되자 다급해진 미국은 한밤중에 회의를 열었고, 두 명의 하급관리가 한반도의 중간쯤인 38도선을 손으로 찍었다. 소련군의 남하를 중단시킬 지점으로 선택한 선이 결국 남북을 갈라놓는 분단선이 되었고 지금까지의 한민족을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약소국의 아픔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안타깝다.
팀 마샬의 주장대로라면 지리적 혜택을 받은 나라들이 결국은 세계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렇다할 적이 없어 지리적 축복 속에 착실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의 사례와 강대국이 설정해 놓은 국경선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혼란과 분쟁을 거듭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사례의 대비는 그럴 듯 하다.
하지만, 지리의 법칙은 역으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압록강을 건너기만 하면 이렇다할 지리적 장애물이 없기에 대륙과 해양 세력의 경유지가 되었다고 진단받는 한반도 역시 반격의 기회는 있다고 본다. 한반도를 넘어 광할한 만주 대륙과 중원을 누볐던 역사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이전에 남북 분단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만 꿈꿀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선 과거의 현재의 세계가 품고 있는 지리의 정치학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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