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사전적 정의를 보자면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고 되어 있다. 다분히 이것은 인류사의 관점에 국한해서 본 것이고, 어떠한 사물이나 자연현상이 변화해 온 연혁 또한 역사라 볼 수 있겠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그동안 역사에 대한 견해를 제시해왔지만 보편적 동의를 구할 수 있을만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판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가 <역사의 역사>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시대를 통틀어 많이 읽혔던 역사서와 그 역사서를 집필한 역사가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또한 역사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위대한 역사가들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생각과 감정을 듣고 느껴봄으로써 역사가 무엇인지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이 책의 범주를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라고 규정했다. 히스토리오그라피란 역사학 이론과 역사 서술 방법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 서술의 역사라는 것이다.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지기 전에도 분명 인류의 역사는 존재했겠지만, 이 책에서는 명확한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서와 역사학자들을 그 서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역사가와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두키디데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사마천의 <사기>,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레오폴트 폰 랑케의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와 <강대 세력들, 정치 채담, 자서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박은식의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오스발트 A.G. 슈펭클러의 <서구의 몰락>, 아널드 J.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제레드 다이아온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이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책 중에 조금이라도 맛을 본 것은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뿐이고, 그마저도 <역사란 무엇인가>는 처음 얼마만 읽다가는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서구의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뜻을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다. 유시민 작가 역시 역사학에 관심있는 교양인의 필독서라고는 하지만 평범한 역사 이론서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의 지식인 사회가 도달한 최고 수준의 지성을 보여주는 책이라 소개하고 있다. 내가 오롯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수박 겉핥듯 <역사의 역사>를 일독했지만 아직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감히 말하진 못하겠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대로 산에 갔다와도 정상까지 오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구에서 조금 걷다가 막걸리 한잔만 걸치고 돌아오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몇번을 거듭 읽는다 해도 수천년 간 최고 지성들의 서사를 완벽히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사실의 기록과 전승 그 자체가 아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다.
이 책은 2018년 6월에 초판 1쇄가 나왔지만 엄연히 원조가 따로 있다. 1994년에 초판이 나왔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가 바로 그 책이다. 삼십대의 젊은 유시민이 쓴 이 책 역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이름 없는 민중인가, 소수의 뛰어난 영웅 엘리트인가? 역사는 필연의 법칙에 따르는가, 우연한 사정에 따라 변할 뿐인가? 역사에 진보가 있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인가? 역사의 심판이란 존재하는가? 역사가들이 쓴 역사는 얼마나 진실한가?
며칠 전에 <국가 부도의 날>이란 영화를 봤다. 나 또한 IMF 구제금융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며 대학을 졸업했었기에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감정이 끌렸다. 한편 우리가 왜 역사를 기억해야 하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흔히 우리는 구한말 국권 강탈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의 편에 섰던 매국노들을 비난하면서도 나라의 무능과 백성의 무지를 탓한다. 그때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고도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00년 후 우리는 또한번 경제 주권을 빼앗기는 아픔을 다시 겪었다. 그것이 식민지가 아니면 또 무엇인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가 두렵다. 알면서도 또 당할 수 있다는 어리석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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