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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한국의 서원 - 넓고 깊은 사색의 세계

by 푸른가람 2018.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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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실린 사진이 인상적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니 가을이 한창 깊었나 보다. 눈에 익은 풍경이긴 하지만 어느 서원의 풍경일지 그저 추측할 뿐이다.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전국에 있는 여러 서원들을 두루 유람했다. 전문적인 시각이 없으니 답사라기 보단 유람이 적당하겠다. 서원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던 차에 만난 이 책이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자문위원이자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허균 선생의 <한국의 서원>에는 서원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에 이어 진입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 유식공간, 정원과 장식으로 나눠 세부적인 설명을 담고 있다. 미리 이 책을 일독하고 서원을 찾아 다녔으면 좀더 깊이 있는 공부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아쉬움이 든다. 한편으론 지금껏 다녀온 기억들을 다시 되살려 보는 재미가 있긴 하다.

서원은 조선시대 유림들이 각 지역에 세운 교육기관이었다. 중국에도 서원이 존재했지만 그들은 관료 양성을 위한 준비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우리의 서원과는 구별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모시는 문묘나 향교와도 다르다. 우리의 서원은 학문과 덕행이 높은 선현들을 사당에 모셨고, 누정과 정원을 꾸며 유식공간을 별도로 두었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 서원의 교육 목표는 우주와 인간의 본질을 깨닫고 인격을 수양함으로써 스스로를 도덕적인 사람으로 완성시키고자 하는데 있었다. 선비 정신의 발현이 곧 서원의 존재 이유기도 했다.

물론, 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전국에 난립하게 되고, 지역내 유력가문의 본거지나 당쟁의 소굴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런 폐단으로 인해 수백여 곳에 달하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에 의해 대부분 훼철되고,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비롯해 47개만 남게 됐다. 서원 역시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 명맥이 끊기에 된 것이라 하겠다.

통상 서원의 구조나 기능에 대해 강학과 제향, 이 두가지를 얘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외삼문을 통해 서원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에 강당이 자리잡고 있고 좌우 대칭으로 동재와 서재가 놓인다. 강당 뒷편으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는 선현들을 배향한 사당이 위치한다. 학문을 닦는 강학공간, 선현을 모시는 제향공간이 서원의 기본적인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허균 소장은 <한국의 서원>을 통해 유식(遊息)공간을 하나 더 얘기하고 있다.

쉽게 얘기하면 유식공간은 놀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란 뜻이다. 그런데 서원에서의 유식이란 세속에서의 방탕한 놀이를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서원 입구에 세워진 누정과 연못, 정원 등이 유식공간을 구성한다.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는 서원의 선비들에게 여유롭게 산수 유람을 즐길 시간이 없었을테니 서원 안에서 자연과 벗하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니 서원의 누각과 정자가 이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많은 사진을 함께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서원의 구성 원리와 강학, 제향, 유식공간들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서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전국의 아홉 서원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나, 그에 속하지 않는 서원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어 무척 흥미롭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유홍준 교수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니라"고 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이 책을 통해 서원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앞으로도 전국에 있는 서원을 쉼없이 찾아 다닐터이니 앞으로는 유람이 아닌, 좀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되길 희망해 본다. 이왕이면 가을이 깊어가는 때가 적기일 듯 싶다. 서원 입구에서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넓은 품으로 우리를 반겨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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