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유홍준 교수의 여덟번째 문화유산답사기가 나왔다. 그의 이번 발걸음은 남한강을 따라 우리땅의 구석구석을 누빈다. 책 표지에 소개되어 있는 온달산성의 풍광이 눈길을 끈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 시원스럽게 뻗어나가며 휘몰아치는 모양이 그 옛날 고구려의 기상을 한껏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종 애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강원도 영월을 시작으로 충주호반의 세 고을인 제천, 단양, 충주을 지나, 남한강변의 폐사지에서 숨을 고른 이번 답사기는 여주의 신륵사에서 그 끝을 맺는다. 시간 날 때마다 발길을 바삐 움직여 다녀본 고을들이라서 그런지 더욱 반갑게 느껴지는 지명과 풍경들이었다.

 

인류 문명의 시작은 강과 함께였다. 세계의 이름난 고대 문명의 발상지들이 이를 입증한다. 사람들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강이야말로 문명의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 한 강은 자연스레 그 유구한 흐름 속에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어 안았고, 흥망성쇄의 궤를 함께 했다.

 

일반인들의 여행은 비전문적인 시각에 국한될 수 밖에 없지만 각 여행지마다 그들만의 소회는 남아있게 마련이다. 이런 단편적인 기억과 느낌들이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를 통해 한층 깊어질 수 있다면 450페이지에 달하는 다소 두꺼운 책을 읽을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바로 이런 역할이 사회에서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역할이라고 해야겠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을 때마다 놀라곤 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 땅의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유산에 관해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그의 전공이 그러했고, 직업이 그 궤적을 고스란히 이어갔으니 다른 이들보다야 많이 앎이 당연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어떤 존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 덕분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번 여덟번째 답사기에서 유홍준 교수는 단양에서 영춘으로 가는 길을 '영춘가도(永春街道)'라 부르며 가장 사랑하는 강변길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구례에서 하동까지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을 우리나라에서 '둘쨰로 아름다운 길'이라고 한 것은 이 영춘가도와 쌍벽을 이루어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해두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남한강을 따라가는 영춘가도는 50리 옛길인데, 지금도 찾아오는 사람이 뜸해 다행스럽게도 관광지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길은 줄곧 남한강을 따라가며 강물이 비집고 내려오는 육중한 산줄기가 둘러 있고, 길가 산비탈엔 이따금 호젓한 마을과 외딴집들이 나타난다며 영춘가도의 풍광을 얘기해 준다.

 

나 역시 유홍준 교수와 마찬가지로 강을 따라가는 좁은 길을 좋아한다. 섬진강을 따라 구례에서 하동을 오가는 길 역시 내가 손꼽는 길이다. 영춘가도가 이 길과 우열을 논하기 힘들다고 하니 당장이라도 몸을 움직여 가보고 싶어진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요즘이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그 어느 것도 예쁘지 않은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