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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

by 푸른가람 201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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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다시 태어난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건축가로서의 삶이다. 물론 현세의 나의 능력과 재주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란 것도 잘 안다. 그러기에 빼어난 건축을 자유자재껏 만들어 내는 뛰어난 건축가들과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며 하나의 풍경이 된 명품 건축들을 보며 경탄을 마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모자란 것을 채우러 오래된 건축들을 보러 다니곤 한다. 얼마나 많은 발품을 팔아야 건축이 지닌 아름다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지 기약은 없다. 하지만 끊없이 이어지는 발걸음을 통해 예기치 못했던 놀라움과 경탄은 물론 치유의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으니 마치 더듬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곤충마냥 깜깜이로 떠나는 답사 여행이 고난의 길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처럼 문외한이 아닌,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땅의 건축물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해답을 얻으려 한권의 책을 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1999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며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는 노은주, 임형남 부부 건축가의 발길과 시선을 따라 걸어 가보려 한다.

 

 

옛 공간의 역사와 의미를 찾아 떠나는 우리 건축 기행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라는 책은 다분히 전문적이다. 그 전문성에는 비단 그들의 전공인 건축 뿐만 아니라 음악과 문학 등 예술의 전방위적인 면까지 아우른다. 하긴, 건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철학과 예술에 관한 고차원적인 지식과 식견이 요구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은 크게 여섯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번째 왜 그 곳은 그토록 사랑받을까? 에서는 종묘와 소수서원, 영주 부석사와 공주 마곡사, 경주 감은사탑을 소개하고 있고, 일상의 재발견, 집을 이루는 것들에서는 옥천 이지당, 정읍 김동수가옥, 강릉 선교장과 공주 루치아의 뜰이 다채로운 설명과 단정한 사진과 함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은이들이 세번째 장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한국 최고의 건축으로 손꼽고 있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산청 산천재, 안동 병산서원과 도산서원, 회재 이언적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경주 독락당,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안 내소사와 담양의 소쇄원이 그것이다. 여섯 곳 모두 몇번씩 다녀온 곳이기에 읽으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엇이 최고의 건축인가 하는 것이 각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섣불리 단언하기 어렵겠지만 여기에 소개된 곳 모두가 최고의 이름이 결코 아깝지 않은 곳이란 것만은 확실하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순례하다는 제목으로 소개된 곳들이 유달리 기억에 오래 남는다. 비어 있지만 가득 찬 역설의 미학, 합천 대동사터는 지금이라도 당장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 댈 정도다. 마음에 두고도 지금껏 가보지 못한 익산 왕궁리 절터나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경복궁와 덕수궁에도 큰 끌림이 느껴진다.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 주는 곳으로 담양의 식영정이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담양에 갈 때면 늘 식영정 마루에 한참을 앉아 시원한 바람에 몸과 마음의 땀들을 식혔던 기억이 있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 식영정 이름 석자가 반가웠다. 누군가에게 여행지 추천을 받게 되면 늘 제일 앞자리에 내놓는 것이 바로 담양의 식영정과 소쇄원이기에 공감의 폭이 더욱 컸을 것이리라.

 

모처럼 좋은 책을 만나게 됐다. 대부분이 한번쯤은 다녀온 곳들이라 더욱 정겹고 따뜻하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급하게 사진 몇장 남기고 수박 겉핧듯 지나치는 답사 여행이 아니라  이들 부부 건축가의 발걸음처럼 제대로 보고, 온전히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그런 시간들로 가득 채워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또 한번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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