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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투명사회 -투명성의 전체주의적 본질에 대한 예리한 통찰

by 푸른가람 201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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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는 내가 읽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두번째 책이다. '피로사회'라는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하지만, 피로사회라는 제목에서 그가 던져주고 있는 화두가 단적으로 드러났듯, 투명사회 역시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단적인 특징 중 하나를 그는 '투명'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일견 생각해 보면 '피로'라는 단어에 비해 '투명'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음침한 뒷골목의 어느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 밝고 오픈된 공간으로 옮겨진 듯한 기분이다. 기존의 비밀스런 결정과정과 거래들에서 많은 비리가 양산된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던 과거의 관행들이 어쩌면 우리를 '투명사회'의 강박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인 한병철 교수의 지적과 같이 요즘 '투명성'이란 단어는 도처에서 그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사회 전방위적인 면에서 투명성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정보의 자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 줄 것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는 것이 오늘날의 강력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철저한 믿음 속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신뢰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사회에서 투명성을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누구나 원하는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신뢰에서 통제로의 시스템적 전환이 일어난다는 중요한 사실을 지은이는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려 애쓰고 있다. 결국 그의 결론은 투명사회는 곧 통제사회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투명사회를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긍정사회, 전시사회, 명백사회, 포르노사회, 가속사회, 친밀사회, 정보사회, 폭로사회, 통제사회들이 그런 것들이다. 단어 자체만으로 보자면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모든 표현들은 결국 투명성이 지배자의 통제 수단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피로사회에서 이미 그는 현대 성과주의 사회의 폐해를 낱낱이 지적한 바 있다. 투명사회에서도 무한 경쟁을 통한 자발적 착취의 서글픈 자화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투명함'을 통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자신의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전시하며 스스로 디지털 통제사회를 완성해 나가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철학자의 소름 끼치는 경고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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