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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76

얼어붙은 연못 너머 노성향교를 거닐다 명재 윤증고택 바로 옆에 노성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의 관립 교육기관 격인 향교가 사대부 집과 함께 있는 것은 상당한 특이한 입지라 할 수 있겠다. 보통의 지방 문화재들이 그렇듯 이 노성향교 역시 도난 방지와 문화재 보호를 위해 대성전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는 해도 닫힌 공간들이 많다는 것은 어쨌거나 아쉬울 따름이다. 노성향교의 역사에 대해서는 기록이 조금 엇갈린다. 어떤 기록에서는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화를 목적으로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고, 다른 기록을 살펴보면 고종 15년인 1897년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을 비롯해 명륜당과 동재, 서재, 삼문이 남아 있다. 아주 오랜 역.. 2012. 3. 6.
수덕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다 고속도로에서 몇 km를 밟고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렀는데도 수덕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짧은 겨울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만 대충 챙겨들고 대웅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의 수덕여관부터 수덕사 경내에는 볼거리들이 꽤 많지만 이날은 그저 대웅전에서 부처님을 만나뵙는 것으로 만족할 요량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날 찍은 사진들은 도무지 별 감흥이 없다. 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로 유명한 수덕사 대웅전의 단아함은 언제 보아도 변함없이 좋다. 날씨도 쌀쌀하고 시간대도 그래서인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모처럼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만이 산사의 적막함을 일깨워줬다. 한참이나 먼 거리를 한바퀴 돌아 애시당초 행선지에 없었던 .. 2012. 3. 4.
펑지에 자리잡은 돈암서원에서 여유로움과 따뜻함을 느끼다 논산, 계룡이라는 고을에서는 사계 김장생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되는 모양이다. 사계 고택 두계 은농재를 지나 논산으로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돈암서원 역시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의 후학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충남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돈암서원은 호남에까지 그 이름을 떨쳤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그 명맥을 유지한 서원이기도 하다. 사실 돈암서원을 찾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돈암서원은 김장생 외에도 그의 아들인 김집, 송준길과 송시열의 위패를 사당에 봉안하고 있는 노론의 대표적인 서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연산지역에 세거하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광산 김씨 가문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주는 유물이 아닐까 싶다. 대구, 경북지역의 수많은 서원들을 .. 2012. 3. 3.
논산 개태사에서 친근한 느낌의 부처님을 만나다 충남 논산시 연호면 천호리 천하산에 있는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과 연관이 있는 절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936년 황산군(지금의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왕건이 후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 덕분이라 여기고 이 곳에 개태사를 지었다고 한다. 여느 사찰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국도 변에서 멀지 않은 평지에 위치해 있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 산사의 고요함을 맛보기는 어렵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수고를 덜 수는 있을망정 절에 와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터에 비해 당우들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아 조금 휑한 느낌도 받게 된다. 법상종 사찰이라는 설명도 있고 조계종 소속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일주문과 극락전에 걸.. 2012. 3. 1.
예학의 대가 사계 김장생 고택, 두계 은농재 애시당초 행선지에 올려져 있던 곳은 아니었다. 목적지는 논산의 명재 윤증 고택이었지만 가는 길에 들러 볼 수 있는 곳을 검색하다 찾아낸 곳이 바로 이곳 은농재였다. 은농재는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 김장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후학들을 가르치며 머물렀던 곳이다. 정식 명칭은 사계고택이라 함이 옳겠다. 은농재는 사계고택의 별당으로 이 고택에는 은농재 말고도 대문채, 행랑채, 안채와 가묘가 남에서 북으로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사계고택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고택 체험을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주위로 높은 아파트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인데, 그 아래 유서깊은 고택이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사계고택이라는 힘있는 필체의 현판이 붙어 있는 대문을 지나면 정면에 나.. 2012. 2. 29.
봉정사의 숨겨진 보물 영산암 일상의 번잡함을 잊으려 절을 자주 찾곤 한다. 그 중에서도 안동 봉정사는 내가 자주 찾는 단골(?) 사찰 중 한 곳이다. 매번 봉정사를 찾을 때마다 단 한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이곳도 이번에는 내가 때를 잘못 맟춘 것 같다. 하필이면 성지순례라는 이름표를 목에 건 수십명의 사람들이 봉정사를 분주히 거닐고 있었다. 산사에 오면 바람에 몸을 내맡기며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고요한 독경소리, 목탁 소리만이 혼탁한 속세의 소리를 잠재워 줘서 참 좋았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의 소리에 이 좋은 소리들이 묻혀 버리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 아래에도, 지난해 국보로 승격된 대웅전 안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봉정사를 찾는 사람들 중에 모르고 스쳐 지나는 곳이 한 곳 있다. 봉정사.. 2012. 2. 28.
석축의 아름다움을 통해 불국사를 다시 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3권에서 불국사를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얘기는 불국사는 누구가 보더라도 아름다워서 꼭 한번은 보고 싶어하는 문화재라는 뜻이기도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의 궁극 또한 바로 불국사라는 얘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불국사는 너무나 유명한 절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불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그 흔한 수학여행이나 경주 여행을 통해서 생애 한번쯤은 불국사 경내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불국사를 잘 안다 여길 지도 모르겠다. 불국사를 와보지 않았더라도 그 유명한 다보탑과 석가탑, 청운교와 백운교 등의 이름을 줄줄이 꿸 정도니 말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인연에서였는지 경주에서 학창시절을 .. 2012. 2. 27.
시(詩)로 지어진 건축, 회재 이언적의 옛집 독락당(獨樂堂)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는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란 책에 독락당이 맨 처음 소개되어 있습니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향한 경주 옥산서원에 갔다 잠시 들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근처에 오래된 고택이 있으니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이었지 독락당이라는 건물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질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찍었던 사진들을 보면 한결같이 깊은 맛이 없습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잠시 스쳐지나 왔었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물론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에서 미리 외부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독락당의 깊은 곳 구석구석까지, 혹은 독락당을 만들었던 회재 선생의 철학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독락당은 24세에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2012. 1. 8.
유홍준의 국보순례 - '나라의 보물'을 순례하는 마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뒤늦게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오래된 것들,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가슴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이런 예술작품들을 제대로 느끼고 감상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관심을 갖고 유심히 살펴보는 노력만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테지요. 그래도 믿어 보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이 짧은 글귀가 마치 정수리를 뚫고 지나는 것처럼 선명한 울림을 안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록 문외한에 불과한 사람이지만 보고 또 보고, 열심히 공부하고, 좀더 느껴보려 애쓴다면 분명 오늘보다는 밝아진 눈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유홍준 교수는 이 책을 '나라.. 2012. 1. 3.
새해 첫날, 고운사에서 절하다 새해 첫날에 의성 고운사를 찾았습니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고운사를 찾아 왔지만 이날처럼 고운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건 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해 첫날이라 부처님 앞에 무릎꿇고 절하러 오신 분들이 저 말고도 또 많았던 가 봅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절이지만 그래도 저 혼자 고즈넉한 산사를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욕심은 또 여전합니다. 사람들과 차량의 번잡함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네요. 그래도 고운사는 모처럼 조계종 본사에 어울리는 분주함을 모처럼 되찾은 것 같아서 저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절하는 마음은 누구나 간절한 것일테니까요. 절을 자주 찾아다니고는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두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무엇이 가로막았.. 2012. 1. 3.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제6권 '인생도처유상수'를 처음으로, 거꾸로 시작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느지막히 읽어보기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앞서 읽었던 세권의 책들도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3권에 담겨 있는 우리 땅 구석구석의 문화재들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경주나 수없이 많이 접했던 안동 등 경북 북부지역의 문화재들에서는 정겨움과 반가움마저 진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우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서산 마애삼존불의 부처님들은 보통의 불상에서 느껴지는 근엄한 절대자의 모습 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이다. 삼불 김원용 선생은 그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 2012. 1. 1.
예천 초간정은 의구하되, 사람은 간 데 없구나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하였던가요. 맞습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인데 사람들의 모습만 달라졌습니다. 2년전 여름날 처음 초간정을 찾았을 때가 떠오릅니다. 초간정이라는 곳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제게 이날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 정자에 앉으면 시 한수가 절로 읊어질 것 같은 예천 초간정 : http://kangks72.tistory.com/758 2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뒤 다시 이 곳을 찾았습니다. 새벽 일찍 회룡포에서의 일출을 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바야흐로 절정을 달리고 있는 계절답게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절로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탁류 속에 가려져 있던 개울도 지금은 맑은 물빛을 되찾았습니다.. 2011.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