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들어도 좋은 말 -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이석원의 산문집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몇 해 전에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읽은 적이 있었기에 별 망설임 없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란 제목을 가진 두번째 이야기 산문집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읽기 좋은 에세이 같았던 전작과 비슷하겠거니 하는 생각과는 달리 이번 두번째 산문집은 무척이나 독특했다.

 

책을 사서 잠깐 맛이나 볼 요량으로 몇 페이지를 펴 들었다. 몇 쪽만 더 하다가 결국 몇시간만에 책의 시작과 끝을 다 보게 된 것이다. 에세이를 생각했던 내게 이 책은 자전적 소설 한편을 들려주는 듯 했다. 그래서 쉽게 읽혔던 것 같다. 한 호흡으로 읽어내릴 수도 있을만큼 흥미롭기도 했다.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단막극을 지켜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정신과 의사 김정희를 닮은 사람도 있었고, 당활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석원의 마음을 쏙 빼닮은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생소함과 당혹스러움은 이미 많이 바래졌지만, 이 책을 통해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더 넓어진 것 같아 고마운 마음도 든다.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각자 다름으로 인해 저만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사람들을 정형화된 기존의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하다보니 우리들의 삶도 찌그러지는 듯 하다.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체로 남겨두는 것도 타인을 이해하는, 그리고 삶을 좀더 편하게 살아내는 방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서 별볼 일 없는 보통의 존재 이석원(글도 쓰고 음악도 하는 이혼남)은 막바지 이혼 소송중인 김정희를 만난다.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기에 그들의 만남이 어떻게 진행되어갈 것인지 흥미로웠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흔한 신파처럼 아픈 결말을 맺는가 싶더니 이게웬걸 뜬금없는 해피엔딩이다.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레 치유되는 모습을 보고싶었던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또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어루만지며 사는 세상은 왜 이다지도 멀리 있는 것일까. 실제로 이런 행복한 결말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는 진실을 인정하기에, 우리는 각박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드라마를 꿈꾸는 지도 모른다.

 

이석원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거나 나름 이름난 인디밴드 음악가 혹은 작가라서가 아니라, 그의 글에서 풍겨 나오는 좋은 냄새 때문이다. 내가 그의 글에 속은 것이 아니라면 그는 썩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 <보통의 존재>들끼리 만나 소주 한잔 하면서 사람 얘기, 세상 얘기를 나눠봤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끌림이 느껴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