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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野球·Baseball

잠자고 있던 강타자 박한이의 재발견

by 푸른가람 2010.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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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분명 뭔가 2% 부족한 박한이였습니다. 2001년 팬들의 큰 기대를 한몸에 받고 삼성에 입단한 후 10년이 흘렀네요. 데뷔하던 해 130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7푼9리, 13홈런과 17타점을 기록하며 프로무대에 잘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지요. 물론 아마시절의 명성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성적이었지만, 프로의 높은 벽을 감안한다면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한이는 팀 사정상 데뷔와 동시에 삼성의 붙박이 1번타자를 맡게 되는데, 박한이 개인이나 삼성이라는 팀을 생각해서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사실 박한이는 부산고와 동국대를 거치며 아마시절부터 국가대표 중심타자를 맡았던 강타자였습니다. 박찬호의 합류로 큰 화제를 모았던 '98년 방콕아시안게임의 드림팀1기 명단에도 아마선수로서 당당히 이름을 올렸을 정도입니다. 물론 박한이는 발도 빠르고, 도루도 곧잘 하는 선수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호타 준족형' 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삼성에서 뛰고 있는 삼성 타자 가운데 양준혁과 더불어 '20-20' 또는 욕심을 더내 '30-30'을 하다못해 한번은 달성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지난 9년간의 통산기록을 보면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01년 13개의 홈런으로 시작해 최고의 성적을 올렸던 '03년(12개)과 '04년(16개)에도 그는 홈런 20개의 벽조차 넘지 못했습니다.

홈런이 적다는 건 주로 출루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1번타자 역할에 충실한 탓이라고 치부한다고 해도, 도루 수가 적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1번타자의 덕목은 무엇입니까? 안타든 사사구든 많이 출루해서 2루를 많이 훔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각 팀의 내노라하는 1번타자들은 한해 3,40개의 도루는 법먹듯이 합니다. 박한이의 도루 수 역시 홈런과 비슷합니다. '01년과 '03년 17개를 기록한 것이 최고기록입니다. 그마저도 '07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도루능력이 떨어져 한자리수에 머물게 되지요.

이쯤되면 더이상 박한이를 1번에 배치한다는 게 무의미해집니다. 선동열감독이 팬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영욱을 새로운 1번타자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것이 이해되는 대목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앞서도 얘기했듯 박한이의 잘못은 전혀 아닙니다. 박한이가 삼성에 입단한 2001년부터 그 이후 몇년간 삼성의 중심타선에는 이승엽, 양준혁, 김기태, 마해영, 스미스, 프랑코 등 내노라하는 강타자들의 각축장이었기에 감히 어중간한 중거리타자 박한이가 낄 자리가 없었습니다.


사실 박한이는 3번타선에 적합한 타자라고 생각합니다. 타격의 정교함도 갖추었고, 제 스윙만 한다면 한해 30개 정도의 홈런은 노려볼 만한 파워를 지녔으며, 남부럽지 않은 빠른 발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정신병자'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가끔 어이없는 주루플레이를 펼치기도 하긴 합니다. 3번타자 박한이 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 분명 지금보단 훨씬 나은 기록을 남겼으리라 확신합니다.

박한이에게 지난 겨울은 참 힘들었을 겁니다. FA자격을 얻게 되는 2009년 시즌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FA를 앞둔 선수들은 젖먹던 힘까지 내가며 몬스터 시즌급의 기록을 올리게 되는데, 불행히도 박한이는 부상 등의 이유로 타 구단에서 입맛을 다실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3할1푼1리의 타율은 그렇다 쳐도 2개에 그친 홈런, 7개뿐인 도루 숫자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다른 구단의 입질이 없자 느긋해진 원소속구단 삼성의 대접도 소홀해집니다. 결혼을 앞둔 박한이의 심경이 여러가지로 복잡했을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과 재계약을 하지만 2010년을 앞둔 박한이의 팀내 입지는 더욱 좁아져 있었습니다. 선동열감독은 1번타자 이영욱을 공공연히 언론에 언급했고, 2009년 시즌 괄목상대의 활약을 펼친 동기생 강봉규는 주장 완장을 찼습니다. 차세대 삼성의 중심타자 최형우도 외야 한자리를 꿰찼습니다. 아직은 지명타자에 만족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게다가 그 자리에는 '양신' 양준혁이 아직 건재합니다.

시즌 출발은 초라했습니다. 선발출전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상황이었지요. 어쩌다 경기 후반 대타, 대수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러다 대타요원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감도는 사이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 옵니다. 올시즌부터 바뀐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하지 못하며 극심한 부진에 빠진데다 부상까지 당한 강봉규의 빈자리를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프로입단 이후 최고의 위기상황을 맞이해 정신적인 재무장을 한 것이 박한이의 강타자 본색을 깨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평생배필을 맞아 심리적 안정을 얻은 것도 한몫했겠지요.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박한이의 활약은 놀라운 것이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제서야 그의 기량이 제대로 만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동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부자연스러운 상태였다면 이제서야 그런 부담을 벗어던지고 자신에게 걸맞는 스윙을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박한이는 공격 전부문에 걸쳐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초반 활약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미지수지만, 2010년이 박한이의 몬스터 시즌이 될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박한이의 재발견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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