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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耽溺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by 푸른가람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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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래된 취미 가운데 하나가 이름짓기다.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아마 고등학교 다니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그 때 가졌던 의문 중의 하나가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름이 왜 그렇게나 많을까 하는 것이었다. 휘(諱)라는 것은 원래 왕이나 제후 등이 죽었을 때 생전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에서 생겨났는데, 이후에는 생존해 있는 사람의 이름 자체를 휘라고 부르며 자(字)나 호(號)를 지어 이름 대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이름난 명사들은 그 본명 보다는 호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율곡, 퇴계, 추사, 다산 등등이 다 그렇다. 깊이 있는 친구 사이의 사귐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로 유명한 오성과 한음 역시 이항복과 이덕형이라는 조선 선조 때의 명신들의 호로 원래 이름보다 일반인들에게는 친숙하게 알려져 있다.

호라는 것은 주로 스승이나 벗이 만들어 주는 것이 보편적이나 본인 스스로가 만드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태어난 동네나 인근의 지명에서 따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그 사람의 특징을 드러내는 이름을 지어주거나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많은데, 요즘 말로 하자면 닉네임이나 별명 정도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의 친구들은 고루한 옛 취미에 관심이 있는 이가 드물었다. 그래서 스스로 고심 끝에 만든 첫 호가 청현(淸賢)이었다. 맑을 청, 어질 현. 이 두 글자만으로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는 끝냈던 것 같다. 물론, 그러한 궤적을 따라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인 것이고.

좋은 뜻을 가진 첫번째 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임새가 많지 않았다. 누구에게 불릴 일도 드물었으며 나 스스로 쓸 일도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예나 동양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에 호를 낙관으로 파 찍거나 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오니 세상이 달라져 있었다. PC통신 시대를 지나 바로 '정보의 바다'라고 일컬어지던 인터넷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수많은 온라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이름이 필요해졌는데 그것이 ID와 닉네임 같은 것들이었다. 

그 무렵에 여러 닉 가운데 푸른가람이라는 이름을 유독 많이 썼었는데 그런 연유로 나의 두번째 호는 자연스레 한글로는 푸른가람, 한자로는 벽하(碧河)가 되었다.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광범위하게 쓰였던 이름이 아니었나 싶다. 바다를 향해 쉼 없이 흐르는 푸른 강물과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나름의 다짐도 있었을 것이다.

볼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는 선명한 가을빛과 서늘한 바람이 너무나 좋아졌다. 십수 년 전 어느 가을날이었던가. 하루 하루 가을이 깊어가고 있던 강원도의 한적한 시골이었다. 해질 무렵의 햇살은 너무나 강렬해 온통 불타오르는 듯 보였고, 서늘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쉼없이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던 그날의 기억이 너무도 강렬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기억하는 이름이 빛날 휘, 서늘할 량, 휘량(輝凉)이었다. 

서예가나 화가도 아니면서 낙관도 몇개 만들어 책에 사인 대신 찍어 드리기도 했고, 아끼는 책에는 장서인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이름을 되뇌일 때면 늘 그날 그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름이 가진 힘이 꽤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 또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젊었을 때는 처연한 가을의 느낌에 오히려 끌렸었는데 이제 하루하루 겨울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다보니 파릇파릇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생명력에 마음이 간다. 몇 해 전 읽었던 '인생풍경'이란 책에서 보았던 무주 잠두길의 봄풍경이 딱 그 느낌이었다. 

그 느낌에 맞는 이름을 만들려고 무지 노력했다. 봄을 뜻하는 한자는 춘(春)이 유일하다. 직설적으로 봄을 드러내는 단어는 피하려다 보니 마땅한 글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형형색색의 봄꽃이 앞다퉈 피어나나고 나무들이 연둣빛으로 물들어 가는 봄날 산의 풍경, 그리고 그 곁을 스쳐 흐르는 냇가의 여울에서 나는 청량한 물소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봄뫼여울이라는 한글 이름이고, 이것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 소계(蘇溪)다. 겨울을 지나 다시 생명이 소생하는 모습, 계(溪)에는 시내 라는 뜻과 계곡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으니 내가 추구하고 싶은 의미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봄날의 산과 여울을 바라보는 여행객의 마음으로 살 것 같다. 침체되어 있던 삶의 에너지들을 다시 끌어내 삶을 소생시키는 노력들을 해보아야지. 작은 노력들이 쌓이고 덩어리로 뭉쳐진다면 보다 괜찮은 인간으로 도약하고 성장하는 디딤돌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역대급 한파가 몰아치니 더욱 더 봄날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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