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면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바람을 타고 최근에 숨겨진 우리의 역사에 관한 책들이 발간되고,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KBS 기자 출신에 현재는 단국대 교수로 재직중인 안형환 교수의 <국경을 넘은 한국사> 또한 이런 범주에 속하는 책이라 볼 수 있다. 왜 한국사는 세계사인가? 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일궈냈던 자랑스런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안형환 교수는 한국인들의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특히 과거의 모습에 대한 한국인들의 자부심은 어떠한가 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 그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우리나라는 약소국가이고 수백 번의 외침을 받았으며 늘 변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학교에서 배워왔고, 그래서 국사를 배울 때마다 마음이 어두웠다고 머릿말을 통해 고백한다.
비단 그 뿐만일까. 비슷한 시대에 국사교육을 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다. 대륙과 해양세력 사이에 낀 약소국가의 운명을 지닌 것이 우리 역사라 배웠다. 엄청난 외침에 시달리면서도 단 한차례의 침략 행위를 하지 않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다소 해괴망칙한 논리까지 역사 교육을 통해 머리에 주입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오류이자 왜곡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어떤 민족, 국가들도 화려한 역사의 이면에는 부끄러움과 치욕의 역사도 늘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도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국가들은 일본의 역사 왜곡 못지않게 수많은 조작과 왜곡을 통해 그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숨겨왔고, 자랑스런 역사만 부각시켜 후손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저자의 진단은 이렇다. 우리가 왜소해 보인 것은 상대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권의 존재 떄문이었다고. 근세 150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인류 문화의 최선두에 있었던 나라가 중국이었지만, 이런 중국에 맞서 동화되지 않고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 온 대단한 민족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경을 넘은 한국사>를 통해 우리 공동체의 기억 가운데 가장 융성하고 화려했던 순간들을 뽑아내 펼쳐놓았다. 이런 취지에서 그는 한국사의 최고 전성기를 뽑아 나열했는데, 그 대표적인 시대가 8세기 신라, 11세기의 고려, 15세기의 조선인 것이다.
그런 목적의식과 취지를 가지고 쓴 책이기에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시베리아의 코리족 출신이라거나, 동북 9성의 위치를 추적한 결과 골의 동북 영토는 고구려 보다 넓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런 얘기들은 비단 이 책에만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를 소개하는 책들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 소재들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역사는 과연 사실이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사서를 통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100% 진실로 믿을 수는 없다. 역사라는 것은 철저히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기 때문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술되었다면 과거의 진실이 그대로 전해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적 진실에 충실히 접근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 단편적인 역사에 몰입되어서는 균형감 있는 실체에 가까이 갈 수 없다. 자랑스런 역사 뿐만 아니라 치욕의 역사 또한 우리의 역사다. 그리고 그 치욕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지나간 역사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머지않아 마주하게 될 미래의 역사인 것이고, 후세에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드는 것은 지금 우리 세대의 몫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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