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가는 글과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이 함께 있어 참 좋은 책이다. 한 일간지 여행담당 기자로 십수 년째 매주 여행을 다닌다는 그가 참 부럽다. 물론 그에게 여행은 즐거움일 수도, 때로 힘들고도 지겨운 밥벌이 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라도 일상을 여행으로 채울 수 있음이 누구에게나 주어진 호사도 아닐 것이기에.
이 책에 담겨진 스물 일곱 곳, 한국의 최고미경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나의 마음을 고스란히 빼앗은 사진은 전북 무주 잠두길 풍경이었다. 모진 겨울 추위를 지낸 나무와 풀들이 연초록의 신록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즈음, 이른 봄날의 풍경은 일년 중 가장 아름답다.
이때의 색이 가장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단풍이 절정에 치닫는 가을날 풍경도 물론 다채롭긴 하지만, 아직은 겨울티를 채 벗어제끼지 못한 것부터 시작해서 성질 급하게 하루가 멀다하고 초록빛을 더해가는 것, 희고 노랗고 붉은 빛으로 피어나는 이름모를 산중의 꽃들까지 해서 정말이지 4월의 우리 산하는 색들의 각축장이자, 화려한 무도회장을 보는 듯 하다.
이런 날에 멋진 풍경을 배경삼아 걷는 느낌을 어떨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죽었다 깨나도 알지 못할 거다.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고. 수중에 지닌 돈이 몇푼 되지 않더라도, 당장 며칠 앞으로 닥친 중요한 프로젝트가 목을 죈다고 해도, 지금 이순간만은 '카르페 디엠'을 외쳐도 좋겠다.
책을 읽으며 많이 반성하게 됐다. 그동안 내가 다녀본 여행이란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던 가를. 그저 눈에 들어오는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 급급했고, 일정에 쫓겨 여행지가 품고 있는 깊은 매력들을 제대로 바라볼 여유를 갖지 못했음에 부끄러웠다.
지은이 박경일이 책머리에 얘기했던 "여행기자는 미경 탐험가"라는 말에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게 된다. 그렇기에 여행기자 역시 온전한 여행자는 아니란 사실을 그는 고백하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 자체에 행복하기 보다는, 누군가의 소매를 붙들고 데려올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인해 풍경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카메라를 내려 놓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위로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렇다. 그저 아름다우면 충분하다. 길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길에서 만난 이야기와 인연들이 사람들을 선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그의 믿음에 나도 힘을 보태보려 한다. 각자의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인생풍경을 소개시켜 주는 것, 이로 인해 내 주위가 좀더 행복해진다면, 선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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