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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인생학교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by 푸른가람 2013.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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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섹스에 대한 철학적, 심리학적 고찰"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과거와 비교해 보면 성(性)에 대한 공개적인 담론이 훨씬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성, 섹스에 대한 이야기들은 19금이란 딱지가 붙은 채 우리의 일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후미진 뒷골목에 뒹굴고 있는 느낌이다.

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름 정도는 한번쯤 들어 봤을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제1편 섹스 편은 알랭 드 보통이 2008년 런던에서 실행했던  '인생학교' 프로젝트 중 가장 주목받았던 여섯 가지 주제 중 하나였던 섹스에 대한 강의를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인생학교 시리즈는 섹스에 이어 돈, 일, 정신, 세상, 시간으로 이어진다.

알랭 드 보통의 기본 전제는 이렇다. 그가 섹스에 관심을 두고 인생학교의 중요한 강의 주제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 것이 섹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과 노이로제, 공포감 또는 혐오 등이 섹스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니 섹스의 본질에 대해 얘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섹스이지만 '카마수트라'나 '섹스의 즐거움'과 같은 섹스에 관한 전문 기교(이른바 방중술)를 가르쳐 주는 책은 결코 아니다. 에로티시즘, 페티시즘,  오르가즘, 성욕의 결핍, 발기 불능, 포르노, 외도 등 자극적인 주제들이 가득하지만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전혀 외설스럽지 않고 담백하다.

책은 왜 모두의 성생활은 이상한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섹스에 대해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알랭 드 보통의 인식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할 순 없지만 일견 섹스 자체에 대해 모든 것을 드러내 놓을 수 없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우리 모두는 일종의 강박감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랑과 섹스는 왜 함께 할 수 없는가 하는 주제도 무척 흥미롭다. 윤리적으로 따지자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질문이지만 책을 읽다 보니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당연히 사랑하는 이와 섹스를 나누는 것이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현실에서 소위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헤픈(?) 남녀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누군가는 나를 그저 섹스 파트너로만 여길 수도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나면 사랑과 섹스가 반드시 함께여야 한다는 오래되었지만 왜곡된 통념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남자들이 '창녀'를 끊임없이 찾는 이유가,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 로망을 갖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 듯 하다.

처음 만나 뜨겁게 나누던 섹스도 어느새 심드렁해지고 우리는 권태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의 벗은 몸을 보아도 흥분되지 않고 섹스 횟수도 급격히 줄어드는 욕망의 결핍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연구했던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이 딜레마를 '그들은 사랑하면 욕망이 없어졌고, 욕망을 느끼면 사랑할 수 없었다.'고 짤막하게 요약했다.

"가족끼리 섹스하는 거 아니다."는 말이 일상의 농담이 된 세상이다. 회피할 수는 있어도 무심함과 권태로 시작되어 자존감의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알랭 드 보통은 오래된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여러 방법을 통해 섹스와 결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했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는 위로의 말을 독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맺음말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섹스 문제만 없었다면 정말 즐겁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성욕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 하고 속을 썩을 수 밖에 없지만 그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없는 실재적 인간의 삶을 사는 우리들이라면 그 문제의 본질을 진지하고 고찰하고 좋은 해결책을 찾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일련의 과정에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섹스' 편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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