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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즐거움

인생을 낭비한 죄 -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다

by 푸른가람 201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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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고뇌를 화두로 좌절을 희망으로 바꾼 수행자 스물 여섯 분의 귀중한 가르침이 담겨 있다. 책 표지의 오래 닳은 발우 사진이 큰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 같다. 빈 발우, 수행자의 밥그릇을 보고도 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큰 가르침은 어찌 보면 책 속에 있는 것도, 고요한 산사의 선방에 있는 것도 아닌가 보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느냐 아니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 이 시간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큰 지혜를 가진 고승대덕의 수행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꼭 고난한 수행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행동을 바르게 하면 내 삶도 옳고 바른 곳으로 향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어 본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사는 법에 대하여  - 혜국 스님

프랑스의 실존 인물이었던 빠삐용은 십 수년 간의 수용소 생활 동안 여덟 번의 탈옥을 시도하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몽사몽 빠삐용이 사막 한가운데로 걸어가고 있는데 사막 맞은편에 재판관과 배심원들이 앉아 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울부짖는다.

그러자 재판관이 이렇게 얘기하며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너에게는 분명 죄가 있다.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동안 결백을 주장하던 빠삐용이 재판관의 말에 마침내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장면은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석종사 혜국 스님께서도 법문 중에 그 영화를 거론하면서 "나는 불교에서 금하는 살생을 저지른 죄보다 인생을 낭비한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잘 사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명쾌한 답을 주셨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돌아올 오늘이기 때문에 영원히 하루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할 일을 못하고 사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 그 사람을 만나면서 하는 말, 오늘 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할 것은 인류사에서 단 한번 밖에 없는 일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새롭게 마지막 하루를 사는 인생을 사세요."

매일 아침에 깨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결코 인생을 낭비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매 순간 흐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귀하게 여겨질 것인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재생할 수 없는 지금을 제대로 살아보자. 지금 이 순간부터.


밥값  - 성철 스님

"야! 이놈들아! 밥값 내놔라! 시주물로 살아가면서 밤낮 이렇게 졸기나 하고 공부를 제대로 안하는 네놈들이 도둑놈이 아니고 무엇이냐? 당장 밥값 내놔라. 이 도둑놈들아!"

신도들의 피 같은 시주물로 살아가면서 수행자가 밥값을 하지 않으면 모두 도둑이라며 몽둥이질을 휘둘렀던 성철 스님의 일화에서 나 역시도 밥값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을 살면서 오롯이 나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고,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도움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과연 나는 그런 도움에 제대로 보답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빈 배  - 청화 스님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와 부딪치면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이라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배는 빈 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람에게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거나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나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맞서거나 상처를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빈 배가 되라.

나 자신을 철저히 비워 그저 빈 배가 되라는 청화 스님의 가르침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나를 비우면 어떤 욕심이나 바람 조차도 없는 나를 경계하거나 시기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를 비움으로써 나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으니 비우는 것이 곧 가장 큰 것을 채우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조화인가.


내 일은 그에게 주는 것 뿐  - 숭산 스님

포교를 위해 미국에 갔다 고생하면서 이룬 모든 것을 한 사람으로 인해 잃어버렸음에도 당신을 배신하고 모든 것을 가져간 사람에게 여전히 무언가를 주시는 스님의 모습에 모두들 기가 막혀 한다. "스님은 그러고 싶으세요?"라며 따지듯 묻는 사람들에게 스님이 던지신  "그것은 그 사람의 job이고 내 job은 그에게 주는 것, 그것 뿐이라네."이란 말은 우리들에게 큰 무언가를 안겨 준다.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숭산 스님이 세상을 향해 던진 화두의 깊고 절실함이 느껴지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끊지 말고 풀라  - 탄성 스님

생전에 금오 큰스님은 우편물이 오면 물건을 묶은 끈을 툭 잘라내지 못하게 했다 한다. 어쩌다 누군가 무심코 가위로 툭 끊어 버리면 날벼락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끊지 말고 풀어라. 맺힌 것은 끊지 말고 풀어야 한다." 한낱 물건도 그렇게 끊어 버릇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도 그렇게 된다고 경계한 말씀이었다.

이 짧은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의 큰 울림을 느꼈다. 나 역시도 평소에 툭툭 잘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손재주가 없어 맺힌 것을 잘 풀지 못하는 탓에 부족함을 드러내기 싫음도 있을 것이요, 급한 성미 탓에 천천히 풀어볼 마음이 모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그렇게 단박에 끊어 버릴 것이 아닌 것 같다. 순리대로 풀어야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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