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읽는 즐거움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by 푸른가람 2012. 3. 17.
728x90


숲을 즐기는 가장 쉬우면서도 좋은 방법은 우리 주변의 어떤 숲에서나 자기 스스로 풍경 속의 한 점경(點景)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냥 숲 바닥에 널려 있는 바위에 걸터앉거나 또는 숲 바닥에 그대로 퍼질러 앉아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몸과 마음이 모두 번다하거나, 혹은 하나가 고요하더라도 다른 하나는 번다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욕심과 기대와 집착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 오는데, 어떻게 하면 한 순간이라도 몸과 마음을 고요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절집 숲은 물론이고, 어떤 숲이든 찾을 때마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온전히 머무는 일에 집중한다. 시간과 공간의 합일에 의해 만들어진 풍광 속에 놓인 나 자신에 집중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잡념을 떨쳐버리고, 다른 일을 벌이고 싶은 욕심을 내려 놓는다. 이런 마음으로 숲에 몰입하면 '욕심과 기대와 집착'이 잦아들기 시작하며, 작은 것에도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다.


산림생물학 박사인 국민대 전영우 교수가 펴낸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조금 비싼 책값 때문에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술 한잔 마시는 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책을 고를 때면 또 그게 맘처럼 쉽지 않다.

이 책의 지은이는 절집 숲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참 나'를 만나는 곳, 느림과 비움의 공간, 1,700년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라고 말이다. 그 어떤 표현도 지나침이 없는 말들이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스물 네곳 절집의 숲들은 한결같이 깊고 풍요로운 공간이다.

그래서 그 곳에 들어서면 나는 번잡한 속세의 일상을 금새 잊어버릴 수 있고, 수많은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버리고 참다운 나를 만날 수가 있다. 그 숲을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부질없는 마음의 먼지들이 다 씻겨져 나가 내 마음이 어느새 텅텅 비어있는 듯한 청량감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스물 네곳 절집 숲들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진 속에 오롯이 담겨져 있다. 숲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뿐만 아니라 지은이의 사진 실력까지도 무척 부럽다. 이른 봄에서 매서운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한겨울까지 그는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절집들을 찾아 그만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 놓았다. 그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책값은 이미 충분히 뽑은 셈이다.

읽어가다 보니 그동안 나도 꽤 열심히 다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소개된 전등사, 용주사, 신계사, 수타사, 봉선사 등 다섯 곳을 제외한 열아홉 곳의 절집 숲을 이미 다녀왔다. 그 중에 어느 절이 최고다라고 섣불리 얘기할 순 없지만 책의 제일 첫머리에 소개되어 있는 개심사를 다녀왔던 지난 봄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마치 사진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가 풍경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그날의 시간으로 돌아간 나는 그저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럴수만 있다면 내 마음에도 절집 숲처럼 푸르고 풍성한 숲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숲 속에서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열어 '나'를 내려 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