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고 싶었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나면 이 책 속에 있는 행복을 조금이라도 나눠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제목만 보고서 구입하게 된 것이 바로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라는 책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책만 사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3월의 어느날.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충청도 땅으로 떠났다.
여행지에서의 첫 날 꽤 야심한 시각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빠져 들었다. 꽁지작가 공지영의 목소리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난 이렇게 책 보다도 TV 프로그램을 통해 지리산 행복학교를 먼저 접하게 됐다. 덕분에 나중에 책을 읽을 때 등장인물과 장소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 시인, 고알피엠 여사, 최도사 등등 조금 독특한 이름을 지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는 지리산 산자락 아래 섬진강 풍경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난 섬진강이 그렇게 큰(?) 강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올해 초 처음 섬진강을 따라 전라도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벚꽃이 만개한 섬진강의 봄 풍경이 가져단 준 큰 감흥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봄이면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로구나. 차에서 몇시간을 꼬박 갇혀 있으면서도 하동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길을 다녀오는 이유를 절로 알게 됐다. 봄이면 벚꽃이요, 벚꽃이 만개한 봄날의 풍경은 어디나 환상적이며 몽환적이지만, 특히나 이곳 섬진강의 벚꽃은 섬진강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게 빛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온통 낭만적으로 그려져 있긴 하지만 어찌 보면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타지에서 이곳을 찾아 와 터를 잡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정착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몇해 머물러 있다가 다시 구름처럼 떠나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이런 여유자적한 삶이 일반인들에게 현실을 뛰어 넘는 또다른 환상으로 자리잡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책 마지막 부분에 소개되어 있는 낙장불입 시인의 시 한편이 이런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삶이 팍팍해지고 괴로워질 때면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일상의 삶에서 우릴 옥죄던 모든 것을 버리고 그저 변함없는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사진에 관심이 많다 보니 책 구석구석에 실어놓은 지리산 사진들에 눈길이 많이 간다. 특히나 지리산 사진작가 강병규 님의 사진은 지리산의 넓은 품과 위대한 자연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꽁지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에 담겨 있는 소소한 지리산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도 좋았지만 마음을 끄는 사진은 따로 있었다.
책 본문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섬진강변 코스모스길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따라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 그 옆을 섬진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가을을 느끼게 하는 사진이다. 섬진강은 벚꽃 피는 봄이 제격인 것 같지만 왠지 내게는 어느 가을날 해질녘의 섬진강 풍경이 그 제일경으로 각인된 듯 하다. 올 가을에는 다른 단풍 명소를 제치고 이곳을 찾아가야만 할 것 같은 까닭모를 의무감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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