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를 생각하면 늘 루앙 프라방이 떠오른다.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2년쯤 전에는 지구상에 그런 도시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목요일의 루앙 프라방'을 시작으로 최갑수의 책을 여러권 읽고나서는 '최갑수 = 여행 = 루앙 프라방' 이라는 등식이 저절로 성립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지금 그는 우기의 루앙 프라방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어야 하는 치욕과, 밥을 벌어야 하는 숭고함 사이에서 여전히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자신을 위로하면서. 그리고 삶이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메콩강가에 지는 붉은 노을의 끝을 바라보고 있을 그에게서 나의 또다른 모습을 찾는다.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라는 제목이 독특하다. 설마 구름 그림자의 속도가 시속 3km에 불과할까만은 그만큼 느리게 움직임으로써 우리는 반대로 더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고, 또 느낄 수 있다는 것 또한 속도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한다. 나 역시도 가끔은 차를 두고 온전히 두 발로 걸으며 세상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실행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이도 부럽고, 사진을 잘 찍는 사람도 부럽긴 매한가지다. 그 어떤 능력도 제대로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못했기에 두가지 재주를 모두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 것일까 하는 불편한 마음도 든다. 최갑수 보다 좋은 글과 사진을 남길 순 없겠지만 먼 훗날 내가 책을 쓰게 된다면 아마도 최갑수의 아류로 시작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치장되지 않은 문장들, 겉멋이 들지 않은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오랫동안 가슴 한켠에 자리잡는다. 아마도 그것은 꾸며지지 않은만큼 진실된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럴싸한 수사로 마음의 빈곤함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최갑수의 책들은 각각이 개별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구석구석에서는 또 일관된 무엇인가가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모퉁이를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모퉁이를 만나면 괜히 어슬렁거린다.
모퉁이를 돌면
내가 간절히 사랑했던, 잊고 있었던, 찾고 싶었던, 만지고 싶었던 당신과 부딪힐 것만 같다.
모퉁이. 당신과 나의 삶이 기적처럼 겹치는 곳.
이 글귀들을 읽으면 최갑수의 골목산책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으면 좋을텐데' 라는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곤 한다. 어차피 그가 살아오면서 축척된 기억들이 책과 사진 속에 녹아 들어있을테니 어찌보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나도 모퉁이를 좋아한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누군가 나타날 것만 같은 골목길의 모퉁이 말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건 글을 잘 쓴다는 것,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겠지만 좀더 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것, 로디아 노트를 하나 장만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도 꼭 그래야 할 것만 같다. 이왕이면 담배도 있는 편이 더 어울리겠지만 이건 십여년전에 어렵게 끊었으니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겠지.
최갑수의 책들이 좋은 이유는 언제든 다시 꺼내 읽어도 지겹지가 않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볼 수 없다면 다음의 짤막한 글이라도 가끔 되뇌어보면 좋겠다. 이 밖에도 더 좋은 글이 많지만 일일이 다 적는 것은 무리다. 그냥 잊혀지는 것들은 또 그저 잊혀지는 대로 그냥 놔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여행은 포옹과 같아요"
"가끔은 여행자의 망막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져요"
우리는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서로가 꿈꾸는 포옹 같은 여행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세월은 가고 꽃은 진다더라. 슬퍼하지 말 것" - 79쪽
"더 이상 찾지 마라. 모든 것이 거기, 사진 속에, 시간 속에 있다" - 104쪽
1박2일은 좀 아쉽고
3박4일은 어쩌면 지루할 것 같고
2박3일
딱 좋아
너 없이 떠나는 여행
너 없이도 그럭저럭 즐거운
너를 그리워하기에도 충분한 시간 - 107쪽
봄날은
그냥 조용히 흘려 보내는 것 - 121쪽
다행이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있다는 건
분명
다.행.이.다. -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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