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누군가 모질게도 그리운 바로 그 사람이 지금 걷고 있는 골목 끝에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마음을 담은 이 책은 여행작가 최갑수가 전국의 골목 스물 네 곳을 1년간 여행하고 난 후의 감상과 사진을 정리해 펴 낸 여행 산문집이다.
나도 어느새 최갑수의 팬이 되고 말았다. 우연찮게 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을 읽고 난 후 이 책이 벌써 세번째다. 불과 몇해 전만 해도 최갑수란 이름 석자를 전혀 알 수도 없던 내게 이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년에 책 한권 읽는 게 쉽지 않았던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펴들고 있는 내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는 걸 그 사람도 알고 있을까.
골목. 어릴 적만 해도 참 친근한 공간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던 곳이 집이 아니라 골목이었을 때도 많았을테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린 골목으로부터 멀어졌다. 하늘 높은 줄만 알고 위로 위로 올라만 가는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도심의 빌딩에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우리는 가끔 마주치게 되는 골목이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최갑수가 1년간 돌아다닌 골목들은 한결같이 좁고 누추하고 가파르다. 건축가 오영욱은 우리나라 산동네의 수많은 골목들은 그 생성 과정이 산토리니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똑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아마도 그건 트라우마처럼 심장에 각인된 고통과 가난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서평에서 밝힌 바 있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공감한다.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 수많은 골목에는 가난과 고통스런 삶이 함께 녹아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골목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골목이 언제나 고달프고 서글픈 공간만이 아닐 수 있는 것은 그 골목에 기대어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과 인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글과 사진을 통해 잊고 지냈던 골목에의 추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그가 소개한 골목길 중 몇 곳은 이미 카메라를 들고 다녀온 곳들이고 내가 어릴 적 걸어다녔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똑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 속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사진과 그 속에 담겨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이제 주변의 골목들과 친해질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고, 이채롭지도 않은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사진을 찍는 사람의 책무라고 하니까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사라져버릴 지도 모를 그 길 끝에서 혹여 너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를 행운을 기대해 보면서.
골목 끝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생수를 우물거리며 '기대수퍼'라고 조그맣게 발음해 본다.
서로 기대 살자고 해서 지은 이름.
하늘 위로 떠가는 구름이 가볍다.
우리의 여생은 가난할 터이지만 그렇다고 꼭 가난한 표정으로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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