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는 다들 아시다시피 속리산에 있습니다. 속리산이란 이름 자체가 천년고찰과 잘 어울립니다. 속세를 떠나서 법(부처가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중생을 위해 설명한 경전)이 머물 수 있는 이 곳이 바로 법주사인 것이지요. 이제는 주변에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속세 사람들이 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옛날에는 사람들이 쉬 찾기 힘든 곳이었을 겁니다.
법주사를 정확히 24년만에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방문지의 한 곳이었는데 강산이 두번이나 변해서인지 어릴 적 법주사를 찾았던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더군요. 거대한 불상(그때는 시멘트 대불이었지요) 앞, 팔상전 앞에서 친구들과 찍은 기념사진만이 그때를 기억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법주사 일주문에 이르는 시원하고 울창한 숲길이 참 좋았습니다. 이 숲길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워서 중도에 법주사행을 포기했을 지도 모릅니다. 시원한 그늘 속을 걸으며 때마침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땀을 식힐 수 있으니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기분으로 보물들로 가득찬 법주사를 향해 걸음을 옮겨 봅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지 않고, 속세를 잠시 떠나 산사에 들어 선 느낌이 참 좋습니다.
일주문 현판에 호서제일가람 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곳 법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인데, 법상종에 속한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예전 국사 시간에 배웠듯 법상종은 통일신라 시대 때 성립된 불교 종파로 유식사상과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때에는 화엄종과 더불어 교종의 2대 종파가 되었는데 이자겸의 난 이후 교세가 많이 위축된 것으로 전해 집니다. 하나의 사찰이 두개의 불교 종단에 동시에 소속될 수 있는 지 의문이 생기네요.
일주문을 넘어 서면 멀리 금강문이 눈에 들어 옵니다. 법주사는 평지에 오밀조밀하게 전각들이 배치되어 있어 볼 거리가 참 많다는 느낌을 줍니다. 금강문 바로 뒤에 쌍둥이처럼 높게 솟아 있는 나무도 참 특이하지요. 이어 천왕문이 나타나고 천왕문을 지나면 그 유명한 법주사 팔상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도 많이 접했던 건물인데도 실제 다시 보니 일반적인 사찰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5층탑으로 높이가 22.7m에 달하며, 1962년에 국보 제5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때 중건을 시작해 인조 4년(1626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전란의 역사가 문화재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벽의 사방에 각 2면씩 모두 8개의 변상도가 그려져 있다 하여 팔상전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도 1968년에 해체복원 공사를 거쳤는데 그로부터 또 40년의 세월이 흘러서인지 고풍찬연한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목조건물이다보니 아무래도 관리하기에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이 쓰일 것 같습니다. 요즘 많은 문화재들이 화재로 소실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팔상전만은 지금 모습 그대로 온전히 유지되었음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팔상전과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사이에는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 국보 제64호인 석련지, 보물 제15호인 사천왕석등, 보물 제216호인 마애여래의상 등 수많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이밖에도 철로 만든 솥인 철확(보물 제1413호), 희견보살상(보물 제1417호),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등 절 전체가 보물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돕니다. 원통보전은 공사중이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법주사를 둘러보는 데 하루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여기도 템플스테이가 있다고 하니 1박 2일 정도로 절에 머물면서 법주사의 멋을 구석구석 음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요즘 많이들 하시던데 전 아직 선뜻 내키지는 않더군요. 개인적으로 법주사 팔상전 외에 관심을 끄는 대상이 두가지 눈에 띕니다.
그 중 하나가 법주사 철당간지주입니다. 천왕문을 지나면 경내 왼쪽 편에 우뚝 서 있습니다. 수많은 사찰을 다녔어도 철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는 모습은 이곳에서 처음 봤습니다. 현재 철당간은 30단의 철통을 연결하였는데 그 높이가 22m에 달한다고 합니다. 팔상전의 높이와 비슷하겠네요. 고려 목종 9년(1006년)에 건립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무려 천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지금의 철당간은 그 당시의 것은 아닙니다. 구한말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그 유명한 당백전을 주조하기 위해 무너뜨렸던 것을 그 이후에 몇차례 복원하였으며 지금의 철당간은 1972년에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세계 최대의 금동입상인 법주사 미륵대불입니다. 높이가 무려 33m에 달합니다. 그 거대함에 처음 보는 순간부터 압도당할 것 같습니다. 중학교 수학여행때 기억으로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탓인지 자비로움 보다는 위협적으로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이 미륵대불도 사연이 참 많네요. 원래 신라 혜공왕 때 금동으로 조성했으나 조선시대 고종 9년(1872년)에 경복궁 축조자금으로 쓰기 위해 해체됐던 것을 1939년 불상 복원을 시작해 지금과 같은 크기의 시멘트 대불이 완성됐고, 안전상의 문제로 1990년에 청동불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이제 이 미륵대불이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법주사에서는 내년까지 무려 20억원을 들여 불상 표면의 녹을 제거하고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를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작업에 80-100kg의 황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이라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네요. 물론 이 돈은 불자들의 시주금으로 충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속세를 떠난 속리산 법주사에 세워질 황금 미륵대불은 어떤 느낌일 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개인적으로 절은 화려하기 보단, 소박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것도 어쩌면 절은 산속에 있어야 어울린다는 생각처럼 일종의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겉모습이 어떻든 마음만 진실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빨리 나가라고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발길은 어느새 법주사 경내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넓디너른 경내를 돌며 뙤약볕을 맞다보니 서늘한 숲길이 이내 그리워졌나 봅니다. 이렇게 돌아서면 또 구석구석 챙겨보지 못하고 왔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을 게 뻔하지만, 또 그런 아쉬움과 다시 찾게 될 그날에 대한 기대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콧노래를 나즈막히 흥얼거리며 숲길로 들어섭니다. 들어갈 때보다 그늘이 더 짙어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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