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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리다

벚꽃이 허드러지게 핀 봄날의 보문단지

by 푸른가람 2009.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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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천년의 고도 경주. 이제는 듣기에 너무나 식상한 이 단어 외에 경주를 설명할만한 것도 사실 없다. 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곳이요, 고도제한, 건축제한 등 수많은 규제에 발이 묶여온 동네다 보니 그나마 과거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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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벚꽃의 향연이 끝나가는 보문단지 ⓒ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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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단지에 몇해전 새로 개장한 신라밀레니엄파크 ⓒ강기석

그러나 최근 경주시 외곽에 하루가 멀다하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고층아파트 탓에 경주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훼손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고도 관리 때문이다. 살고 있는 시민들도 불만이고, 천년전 찬란했던 신라의 향기를 느끼고 싶어 경주를 찾는 사람들에게도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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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치고 경주에 한번 와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릴 적 수학여행을 왔다거나, 친구 또는 연인과 큰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도시가 바로 경주다. 그렇다면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어디일까? 불국사 혹은 석굴암? 아니면 박물관이나 첨성대, 안압지 같은 유적지일까?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곳은 아마도 보문관광단지일 것이다. 보문관광단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4년 개발이 시작되어 1979년에 1단계 공사를 마치고 개장했다. 보문호를 중심으로 각종 호텔, 위락시설 등이 밀집해 있는 경주관광의 중심지이다.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엔 오래된 벚나무들이 있어 봄이면 온통 허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보문단지 전체가 하얗게 피어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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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단지의 오래된 상징 물레방아 ⓒ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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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 선재미술관, 김우중 대우그룹회장 부부가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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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호 선착장의 모습. 봄이면 수많은 연인들이 저 오리배에 오를 것이다. ⓒ강기석

경주에 십여년 이상을 살면서도 사실 벚꽃놀이란 걸 해 본 적이 없다. 봄이면 어딜 가나 지천으로 널린 게 벚꽃이었으니 새삼 벚꽃놀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어색했다. 너무나도 흔한 꽃을 보려고 봄이면 경주 전체가 온통 주차장으로 변하는 걸 보면서 경주에 벚꽃구경 오는 사람들은 참 이해못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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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경주를 떠나 살게되면서 나도 그 이상한 사람들의 무리에 끼게 되었다. 늘 보던 것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니 봄이면 이상하게 생각이 났다. 보고싶어 졌다. 그래도 휴일의 그 무시무시한 전쟁터는 피해보고자 평일을 택해 보는데 늘 때를 놓치는 게 다반사다. 대부분의 꽃들이 그렇듯 벚꽃의 절정은 한순간이다. 온 천지의 벚꽃이 활짝 폈는가 싶더니 어느날 무심코 내린 봄비에 가녀린 꽃잎을 흩날린 채 사라져 버리는 야속한 존재다.

벚꽃이 일본의 국화다보니 벚꽃을 일본의 국민성에 비유하곤 한다. 가장 화려하게 폈다 순식간에 사멸해 버리는 것이 일본의 역사와 닮았다 한다. 화려하나 향기가 없는 꽃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고, 일본의 나라꽃이라는 이유때문에 한때는 벚나무들이 수난을 당한 때도 있었다. 벚나무를 베어난 자리에 우리나라꽃 무궁화를 심는 것이 애국의 한 방편이 된 적으로 이해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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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벚꽃이 일본의 국화라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겠는가. 꽃은 그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것이다.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자연의 본질에까지 덧칠을 하지는 않는게 좋겠다. 경주를 찾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국화인 벚꽃을 보러 오는 것은 아닐테니까.

전통과 역사가 지배하는 도시인 경주에 현대적인 분위기의 보문단지는 이질적인 것이 사실이다. 경주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천년전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는 비가 와도 옷이 젖지 않을 정도였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과장된 얘기긴 하겠지만 그만큼 경주가 번성한 도시였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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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에게 과도한 규제를 해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것이 아니라 아예 시내 전체를 신라 시대로 복원을 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으로 만들면 외국관광객들이 보다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하곤 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생활의 터전을 잃고 새로운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말그대로 상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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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화유적도시 경주의 현실은 몹시 어둡다. 불행하게도 미래 역시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더이상 문화유적 중심의 고리타분한 관광아이템으로는 매력이 없다. 해외 각지에 유수한 볼거리들이 널리고 널렸는데 경주에 불국사나 석굴암을 보러 머나먼 외국에서 찾아오겠는가. 그래서인지 경주는 방폐장 유치에 전 시민이 일심단결할 수 밖에 없었던 서글픈 처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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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도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경주에 살면서나, 지금 떠나 있는 상황에서도 늘 경주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너무나 보수적인 도시인 경주. 생존을 위해서는 이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사진에서 보는 봄날의 경주는 아름답다. 그러나 경주의 봄은 너무나 짧다. 언제까지 봄날 허드러지게 핀 벚꽃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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