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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耽溺

중년의 독서 - 책머리

by 푸른가람 2023.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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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의 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넓은 들 한복판에 띄엄띄엄 농가들이 점點처럼 박혀 있어 독가촌獨家村이라 불렀다. 또래 아이들도 많았고, 산으로 들로 냇가로 뛰어다니면 ‘놀 거리’가 지천으로 늘렸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집에 전기가 들어왔다. 호롱불 아래 저녁을 먹던 기억이며, 바느질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님께서는 벼농사에 밭일, 특용작물까지 바쁜 농사일로 눈코 뜰 새 없으셨다. 학교에 가거나 시내에 있는 큰집에 가서야 책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큰집에 갈 때면 책꽂이에 가득 찬 책들을 읽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서른 중․후반부터 책에 탐닉耽溺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을 인생의 중년中年이라 부른다. 남자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부르는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나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번 멈춰 숨 고르며 지금껏 살아온 삶을 반추反芻하고, 남은 생에서 이루어야 할 바를 확고히 할 때가 아닐런지. 그래서 나는 중년中年이 아닌 중년重年이라 부른다. 그래서 중년의 독서다.

 나이가 들다 보니 기억력마저 쇠잔衰殘해져 간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고서는 잊지 않기 위해 블로그에 차곡차곡 서평書評을 남겼다. 언제부턴가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는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정리할 시간이다.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긴 것 중에 백여 편을 추려 책으로 엮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 시간동안 오롯이 책에만 집중할 수 있어 고마웠다. 번뇌煩惱, 잡념雜念 따위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안을 얻는 시간이었다. 책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고스러운 노력이 아닌, 책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독서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4월의 폭설 속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왕피천에서 輝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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