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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의 耽溺

한국의 산사 기행 - 책머리

by 푸른가람 2023.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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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절을 좋아합니다. 신심 깊은 불자도 아니요, 불교에 조예(造詣)가 깊지도 않지요. 교류하는 스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기에 왜 절을 찾아다니는 지 선뜻 답하기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참 많은 절을 다녔습니다. 조계종 본사와 같은 큰 절에서부터 깊은 산골에 은거하고 있는 암자까지 수백 여 곳이 넘습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면서부터, 오래된 목조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절이 좋은 이유는 오래된 절집이 주는 안온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절에 이르는 아름답고 풍성한 숲길이 주는 상쾌한 느낌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 들어서면 번잡한 속세의 일상을 금세 잊어버릴 수 있고, 수많은 욕심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던 나를 버리고 참다운 나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숲을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부질없는 마음의 먼지들이 다 씻겨 나가는 듯 청량감을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풍경의 일부가 되는 듯 합니다. 고요하고 평온해 내 마음에도 푸르고 풍성한 숲이 생기기라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숲 속에서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열어 나를 내려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가을날의 풍경은 또 어떨까요. 황홀한 풍경을 혼자만 누리고 있다는 것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정한 얘기들을 나누며 함께 이 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불가에서는 모든 이에게 부처님의 모습이 있다 했습니다. 너무 멀리서 피안(彼岸)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 곁에 있는 사람에게서 부처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계곡을 따라 절에 이르는 숲길을 걷노라면 잡다한 번뇌가 절로 지워집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 숲길을 따라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오래된 절집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입니다. 

   얼마나 오래되고 큰 절인가, 많은 신도들이 찾는 유명한 절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사색할 수 있고,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절들이면 좋습니다. 절은 절하는 곳이요, 마음에 고인 시(詩)를 읊어보는 곳이면 족하겠지요.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 산지승원’ 일곱 곳과 조계종 본사들을 비롯해 아름답기로 소문난 대한민국 대표 사찰 서른 곳을 모았습니다. 혼자서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앞으로의 여행은 좀 더 느려져야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살펴보며 교감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어느 좋은 날에 고요히 산사를 거니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네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하길.


풍경 소리 그윽하게 울리는
운주사 와불 앞에서 輝凉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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