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은 아마츄어 사진가에게 겨울은 부담스럽다. 봄꽃들이 만개하거나, 온 산이 단풍으로 불타 오를 때면 어느 곳으로 떠나도 좋겠지만 겨울은 그렇지 않다. 온통 무채색의 풍경에서 괜찮은 작품 하나를 건져낼 수 있는 내공이 없는 아마츄어들에게 겨울은 잠시 카메라와 멀어져야 하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대로 사진을 찍을 줄 아는 사람에겐 겨울이 제 격이다. <열아홉 편의 겨울 여행과 한 편의 봄 여행>의 지은이 이희인 작가 역시 겨울 느낌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사진 뿐만 아니라 글에서도 겨울이 오롯이 느껴지는 듯 하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그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리란 짐작이 된다.
이희인 작가 역시 광고 카피라이터라는 직업과 오래 화해하진 못했지만, 그 직업 덕분에 생각과 마음을 늘 열린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고, 채고가 여행, 문화와 예술 언저리에 삶을 부려 놓을 수 있었으니 참 고마운 천직이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직업이란 것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리라.
하필이면 왜 겨울이고, 겨울 여행이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이희인 작가의 답은 확실하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추운 문 밖으로 나서야 하는 겨울 여행을 감행하는 데 주저하지만, 길 위에 서면 더 많은 것이 우릴 반긴다고.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오른 설산이나 거센 칼바람이 달려드는 바다 앞에서 문득 우리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가 되노라고.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여정을 통해 우릴 짓누르는 화두를 잊고 몸과 마음을 말끔히 포맷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진정한 여행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한다면, 겨울은 홀로 떠난 여행자에게 가장 훌륭한 사색의 공간을 제공해 준다며 작가는 우리에게 홀로 떠나는 겨울 여행을 권하고 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나 역시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적어서 오롯이 그 공간을 나만의 것으로 전유할 수도 있었고, 쉽게 만날 수 없었던 풍경과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때의 열정이 사라진 요즘, 이 책은 내게 예전의 나를 떠올려주게 했다.
열아홉 편의 겨울 여행은 우리나라에서 시작해 일본과 중국, 몽골, 러시아를 거쳐 네팔, 남미, 북유럽을 돌아 온다. 겨울 풍경이지만 결코 차갑게 느껴지진 않는다. 온통 눈으로 뒤덮혀 있는 어느 북유럽 마을의 저녁 풍경은 겨울의 끝자락에 불어오는 훈풍처럼 따뜻하기까지 하다.
계절은 어느새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짧기만 했던 가을의 야속함은 이제 잊어야겠다. 굳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여행지가 아닐지라도 가까운 강원도의 어느 산골 풍경도 좋고, 강원도 동해안의 한적한 바닷가도 좋겠다. 잃어버린 열정 또한 누가 되돌려 줄 수 있는게 아니지 않는가. 우선 떠나보자. 여행자에게 답은 결국 길 위에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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